2009년 8월 1일 토요일

◆Summer MBA / (3)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

기업가치? 이젠 영업이익 말고 EVA를 봐라
영업이익서 법인세ㆍ이자ㆍ자본비용 뺀 금액 EVA가 마이너스라면 사업 접으라는 의미
◆ Summer MBA / (3)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

글로벌 경제위기가 최악 상황을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기업들에는 구조조정이라는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경영자들은 어느 사업이 존재가치가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불황을 이유로 임금을 깎거나 동결했다면 실적이 좋아진 뒤 노조와 갈등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EVA(Economic Value Addedㆍ경제적 부가가치)는 경영 판단 기준으로 매우 유용한 지표다.

제조업체인 A사를 예로 EVA가 뭔지부터 살펴보자. A사 자본은 4조원, 부채도 4조원이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매출액 2조원에 영업이익 8000억원을 올렸다. 채권단 측에서 빌린 이자비용과 세금을 제외하니 순이익은 3360억원. 밤낮 없이 일한 직원들은 "이익을 많이 냈으니 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경영진 측 대답은 `노(No)!`였다. EVA를 고려하면 남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 EVA가 0보다 작으면 문 닫아라

= 기업가치를 논할 때 일반적인 기준은 영업이익이다. 이에 따라 좋은 기업인지 아닌지, 투자가치가 있는지 아닌지를 평가하곤 한다.

영업이익은 크게 채권자 몫인 이자비용, 정부 몫인 세금, 그리고 주주 몫인 순이익으로 구성된다. A사가 이자율 8%에 부채 4조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자비용으로 채권단에 돌아갈 금액은 3200억원. 따라서 세전이익은 4800억원이 된다. 여기에 법인세를 30% 납입했다고 가정하면 정부 몫으로 1440억원이 돌아간다. 나머지 순이익 3360억원은 주주 몫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주 몫인 순이익 3360억원은 과연 충분한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주주들은 항상 이자율보다 더 높은 수익을 원한다. 리스크에 따른 기회비용 때문이다. A사 자본은 4조원이고 주주들이 기대하는 최소 수익 수준을 이자율(8%)보다 높은 10%라고 가정하면 4000억원이 주주 몫이어야 한다.

따라서 주주 관점에서 순이익 3360억원은 기대 수익보다 640억원 모자란 수치다. 따라서 A사 경영진은 직원들 요구에 대해 단호히 `노`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은 남은 이익을 나누자는 직원들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 대신 "EVA가 플러스니 이익을 나눠 달라"고 요구한다면 훨씬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된다. EVA가 플러스라는 것은 주주들이 기회비용을 초과해 수익을 얻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EVA 신봉자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꼽힌다. 그는 "EVA가 마이너스라면 회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 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들 또한 EVA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 현금이 최고…EBITDA를 높여라

서윤석 교수가 이화여대 경영대학 신세계관에서 기자에게 EVA의 함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화이트보드 내용은 서 교수의 친필 강의 노트. <김호영 기자>
= 지난해 한때 두산그룹에서 불거졌던 유동성 논란의 중심에는 49억달러를 들여 인수했던 미국 밥캣이 자리잡고 있다. 경기침체로 건설장비 업체인 밥캣 실적이 좋지 않자 인수 때 29억달러를 빌려준 채권단과 맺은 채무약정을 지키지 못할 것이란 염려가 증폭됐기 때문이다.

당시 두산은 `부채/EBITDA`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밥캣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약정을 채권단과 체결했다. 그러나 밥캣 EBITDA가 떨어지자 두산이 투입해야 할 자금이 늘어난 것이다.

EBITDA가 무엇이기에 채권단은 기업 존속가치를 가늠할 판단기준으로 삼았을까. EBITDA는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이익(Earnings Before Interest, Tax,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이다.

쉽게 말해 기업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실질 현금을 의미한다. 따라서 EBITDA는 기업 인수ㆍ합병(M&A) 등에서 실제 가치를 평가하고 기업 수익창출 능력을 비교하는 데 활용된다.

EBIT(Earnings Before Interest and Taxㆍ이자, 세전 이익)에 비용으로 차감했던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상각비를 더해 구한 값이다. A기업 사례에서 `감가상각비+무형자산상각비`가 500억원이라고 하면 A사 EBITDA는 8500억원이다. 여기에 A사가 속한 산업의 평균, A사 성장성 등을 반영한 `EV(기업가치)/EBITDA`가 10배라고 가정하면 A사 기업가치는 8조5000억원이 된다.

EBITDA에 근거한 기업가치에서 부채 4조원을 제외한 4조5000억원이 주주가치다. 만약 A회사가 상장회사이고 시가총액이 5조원이라면 A사는 주식시장에서 5000억원 고평가된 셈이다. 따라서 채권단의 관심은 실질 현금을 의미하는 EBITDA에 있을 수밖에 없다. 두산이 추가 자금을 투입해 부채를 줄일 수 없다면 다른 선택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 밥캣 EBITDA를 높여야 하는 것이다.

■ 기업 구조조정, 재무제표 맹신은 금물…브랜드 파워등 기업가치 꼼꼼히 따져본후 칼대야

2009년 여름 한국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는 괴물과 한바탕 전투를 벌이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계 정보가 차지하는 역할은 절대적이다. 재무제표상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존재한다. 재무회계식의 획일적인 사고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사가 a, b, c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각각의 사업은 1000억원, 600억원, 40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고 각각의 공헌이익은 200억원, 290억원, 300억원이었다. 그런데 A사 자체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500억원이다.

이를 매출액 비율에 따라 a, b, c사업에 부담시켰다면 이 비용을 각각의 이익에서 250억원, 150억원, 100억원씩 차감해야 한다. 이 경우 각 사업 부문의 최종 영업이익은 -50억원, 140억원, 200억원을 기록하게 된다. a사업은 5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꼽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A사가 a사업을 정리하고 나면 b, c사업만 남는다. 이때 고정비 500억원은 b, c사업이 나눠 맡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매출액 비율에 따라 배분하면 각각 300억원, 200억원을 차감하게 돼 영업이익은 b사업의 경우 10억원 적자, c사업은 100억원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 경우 b사업을 또 정리할 가능성이 있다.

b사업을 정리한다면 A사의 고정비는 c사업에서 모두 감당해야 한다. 결국 A사는 c사업도 할 필요가 없다.

얼핏 보면 어리석은 경영방식 같지만 이는 미국의 한 회사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례다. 이를 `죽음의 순환(Death Spiral)`이라고 부른다. `죽음의 순환`은 고정비를 무조건 사업별로 100% 배분해야 한다는 재무회계적 사고방식이 야기한 결과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신규 사업을 시작하면 기존 사업이 부담하던 공통비를 나눌 수 있어서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오류도 야기할 수 있다.

결국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외부 이해관계자를 위한 `재무회계`가 아니라 내부 경영자를 위한 `관리회계`다. 이는 경영자의 내부 자원관리에 대한 의사결정과 부서, 개인의 실적 평가를 위해 회계정보를 탄력적으로 구별, 측정, 분석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과거 대우그룹 붕괴 과정에서 재무회계적 잣대로 인해 기업의 내부적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재무제표는 기업의 중요한 재무 정보를 담고 있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모든 해법을 제시하는 자료는 아니라는 얘기다.

■ He is…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55)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에서 회계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을 거쳐 미국 UCLA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일리노이대학에서는 종신교수 자격을 받았다. 국내로 복귀해 아주대를 거쳐 이화여대 경영대 학장과 한국관리회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서 교수는 대기업 경영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00년 두산중공업과 LG텔레콤 사외이사를 시작으로 2003년부터는 포스코와 SK의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이사회 출석률은 100%이고, 안건에 대해 반대도 꺼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국이사협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회계학이라는 어쩌면 딱딱한 학문을 연구하고 있지만 취미는 당구. 스코어가 500점이다. 가방에는 항상 무협지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사고가 자유롭다.

■ <용어>

EVA(Economic Value Addedㆍ경제적 부가가치) =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에서 법인세ㆍ금융ㆍ자본비용 등을 제외한 금액을 뜻한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으로 새로운 투자에 대한 사전 검증은 물론 사후 평가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성과를 보다 근본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기준을 제공한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의 재무적 가치와 경영자 업적을 평가할 때 순이익이나 경상이익보다 EVA를 더 많이 활용한다.

[정리 = 박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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