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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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aford Royal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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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6. 8.


                Eden. Lagats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10] 뭉크의 '절규'

입력 : 2009.07.08 05:36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에 관객이 몰리는 것을 보면 미술도 많이 대중화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시뿐 아니라 인쇄매체나 인터넷에서 쉽게 미술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몇몇 유명 작품들은 대중문화에 편입되어 변형되거나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이런 작품 중에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가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해변가다. 노을이 지는 저녁에 다리 위를 걸어가던 한 인물이 갑자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른다. 실제로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메아리처럼 배경의 풍경 속으로 퍼져가면서 화면 전체를 울리듯 시각화되었다. 뭉크는 어느 날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걷다가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고, 자연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절규를 느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뭉크의 '절규'.
세기말 인간의 신경쇠약적인 불안과 고독을 표현하는 이 그림의 해골과 같은 얼굴은 강한 충격을 준다. 그는 인상주의 그림들처럼 독서를 하는 여성을 그리기보다는 느끼고 고통받고 숨을 쉬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인간의 내면세계를 노출시킨 뭉크의 그림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뭉크의 전시회가 열린 곳곳에서 그의 작품들이 철거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한때 과격하게 여겨졌던 이 작품은 20세기 후반에 오면서 친밀한 대중적 '아이콘'이 되었다. 사람들은 절규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1994년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서 이 작품이 도난당했을 때 낙태반대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훔쳤다고 하면서 '절규'는 죽어가는 태아의 소리 없는 비명이라고 주장했다.

'절규'의 이미지는 가면으로도 만들어져 핼러윈 파티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하고, 학자금이 없어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의 이미지로도 쓰였다. 가장 유머러스한 것은 40세로 중년을 맞이한 사람에게 보내는 생일카드에 사용된 경우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작품이라는 원작의 신비는 사라지고, '절규'는 오늘날 일상의 이미지가 되었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9] 르 코르뷔지에의 성당

입력 : 2009.06.30 22:37 / 수정 : 2009.07.06 10:55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들이 그리스에서 재차 반환요구를 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조각상들은 19세기에 영국의 외교관 엘긴이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가져간 것인데, 그런 연유로 일명 '엘긴 마블'이라고 불린다. 그리스 미술 전성기에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기원전 447~438년)은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수호신 아테네 여신에게 바친 신전이다.

파르테논은 '군신(軍臣) 아테네 여신의 방'이라는 뜻이다. 국가의 힘과 이상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했던 이 신전은 아크로폴리스(높은 도시라는 의미)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은 하얀 대리석의 장엄한 건축이다. 명확한 구조와 완벽한 균형 및 비례를 보이는 이 신전은 아테네인이 믿었던 조화로운 우주적 질서를 반영한다.

‘노트르담 뒤 오’성당.
파르테논 신전은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스위스 태생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이다. 그는 젊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파르테논은 드라마'라고 노트에 썼다. 르 코르뷔지에가 1955년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롱샹에 지은 '노트르담 뒤 오' 성당은 파르테논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초록색 잔디의 높은 언덕 위에 서있는 이 성당은 파란 하늘을 등지고 하얀 실루엣을 드러내며 파르테논을 연상시킨다.

롱샹의 이 성당은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종교적 건물과도 다르다. 약 300명 정도의 신도들이 앉을 수 있는 이 작은 성당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조각과 같다. 벽과 지붕은 모두 기울어진 선이나 곡선으로 되어 있다. 외부의 모습은 마치 성곽이나 보트를 연상시키고, 천장이 곡선으로 내려앉은 내부는 동굴에서 예배를 보는 듯한 은밀한 느낌을 준다.

천장과 벽 사이에는 약 10㎝ 정도 간격이 있어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신비스럽게 실내를 밝힌다. 무엇보다 각각 크기가 다른 창문의 현대적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은 극적인 감명을 불러일으킨다. 시각적이고, 감정적이면서 명상적인 롱샹의 성당은 현대 종교건축의 또 다른 드라마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8] 베르메르의 위작

입력 : 2009.06.23 23:17 / 수정 : 2009.06.26 10:12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영화가 있다.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활약한 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을 주제로 한 픽션이다. 19세기 중엽에야 진지한 연구가 시작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생애는 영화와는 달리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동안 베르메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화가이면서 화상(畵商)이어서 작품을 많이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르메르는 창문이 있고 지도나 그림이 걸려 있는 방에서 여성의 일과나 남녀가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들을 즐겨 그렸다. 차갑고 섬세한 빛의 흐름은 물체의 구조와 색채의 변화를 미묘하게 포착한다. 친밀한 공간 속의 인물들은 세속의 일상에서 벗어나 꿈과 같이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준다. 대부분 소품이지만 완벽한 질서와 시각적 화음은 그를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로 인정받게 하였다.

베르메르의 ‘물 주전자를 쥐 고 있는 여인’
현재 알려진 베르메르의 작품은 36점이다. 미술사학자들은 그의 작품이 더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희망을 이용한 사람이 바로 한 반 미게렌이었다. 사실 묘사에 탁월했던 이 화가는 20세기 초 추상미술이 대세가 되자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베르메르의 물감과 터치를 연구했다. 그런 다음 17세기 무명화가의 그림을 사서 물감을 벗겨내고 그 위에 베르메르처럼 그리고 사인을 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들이 모두 속아 넘어가 이 위작들은 대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미술관에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백을 하고 말았는데, 위조작품 한 점이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괴링의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국보급 작품을 적에게 팔았다는 반역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위작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미술 작품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른 오늘날에는 전문적인 위조자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유명한 미술사학자이자 뛰어난 감식가였던 막스 프리드먼은 90세가 넘어 눈이 어두워졌어도 작품 앞에 서면 직감으로 진품인지 아닌지 알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학자들의 전설은 끝나고 만 것일까?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7] 한국전 참전 기념물

입력 : 2009.06.16 23:02 / 수정 : 2009.06.18 11:15

6·25를 기념하는 기념물은 우리나라는 물론이지만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나라에서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 있는 '한국전참전용사기념물'이다. 1995년에 완성된 이 기념물은 순찰 나온 미군 19명이 서로 주의를 환기시키며 한발 한발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모두 비옷을 입힌 이유는 많은 군인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북한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혹한과 비바람이었다고 회고했기 때문이다. 조각상들 앞에는 원형의 '기억의 연못'이 있고 거기에는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또 옆에는 길이 50m의 검은 화강암 벽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2400명의 육·해·공군, 군목, 간호사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물'.
이 기념물 건립은 1982년 내셔널 몰에 세워진 '월남전참전용사기념물'에 자극을 받아 추진되었다. 월남전기념물은 70m에 달하는 두개의 검은 화강석이 125도 각도로 V자 형태로 마주치는 단순한 추상 형태였다. 검은 화강석에는 사망한 군인 5만800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승리보다는 죽은 병사를 기억하게 하는 이 기념비의 참신함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찬사를 보냈지만, 검은색은 슬픔과 수치를 상징하므로 참전 군인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비난도 거셌다.

월남전기념물에 대한 논쟁은 한국전기념물에도 영향을 줬다. 한국전기념물 건립위원회는 참전 군인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고 생생한 전투장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를 원했다. 아주 뛰어난 사실성을 보여주는 기술적인 훌륭함은 실제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의 긴장과 피곤을 매우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이 기념물이 전쟁을 더 이상 승리와 패배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중요하다. 기념물이 영웅적인 전투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개념에서도 벗어났다. 그보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헌신한 평범한 군인들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념물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조형물이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6] 미술가의 교육

입력 : 2009.06.09 23:07 / 수정 : 2009.06.18 11:21

 

나의 이메일 이름은 첸니니다. 이메일을 계정할 때 마침 중세 이탈리아의 화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1370?~1440?)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였다.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첸니니가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이유는〈일 리브로 델라르테(미술의 책)〉를 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익힌 기술을 다른 미술가에게 전수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3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 그는 모든 미술의 기본은 드로잉이며, 도제 첫 일 년 동안 매일 종이나 패널에 펜·초크·목탄·붓으로 연습하라고 충고했다.

르네상스에 들어오면 화가의 훈련은 기술단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지식, 과학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드로잉에 대한 강조는 여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관찰력과 상상력을 키우려면 항상 스케치 북을 가지고 다니라고 권장했다. 1563년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가 세워져 처음으로 미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이후 유럽 미술 아카데미의 기본과정은 인체와 석고 드로잉으로 이루어졌다. 이토록 드로잉을 강조한 이유는 서양회화가 주로 역사·종교·신화를 주제로 하는, 기본적으로 인물을 그리는 미술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는 사람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표현, 동작, 운동감에서 감정을 읽고 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15세기 초 첸니니의 제단화.
19세기 중반부터 이에 대한 반발이 시작되었다. 미술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는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미술가들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양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모더니즘 미술가들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미술이 중요시한 창의력과 자기표현 중심의 실기 교육이 지나치게 엘리트적인 미술가를 양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폴 게티 재단에서 미술가 지망생들에게 성(性)·인종 등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문 교양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우리나라 모 대학의 미대 입학시험에 실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훌륭한 미술가를 키우기 위한 바람직한 교육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5] 홀바인의 초상화

입력 : 2009.06.03 03:27 / 수정 : 2009.06.05 09:19

 

초상화가 실제 인물과 똑같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부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적어도 인상주의 이전까지는 화가들이 인물을 이상화해 그리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활약했던 독일의 한스 홀바인(1497~1543)은 자신이 파악한 인물의 단점을 훌륭하게 보완해 그려 의뢰인을 만족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초상화가였다.

바젤에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초상을 그린 후 그의 소개로 영국으로 간 홀바인은 헨리 8세의 대법관이던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런 인연으로 영국에 머물게 된 그는 곧 헨리 8세(재위 1509~ 1547)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헨리 8세는 6번이나 결혼을 했다.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두번째 왕비인 앤 볼린을 처형했던 헨리 8세는 세번째 왕비 제인 시무어가 죽자 또다시 새로운 신붓감을 찾고 있었다. 교황 세력에 맞서고자 한 그는 외국 신부를 맞이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홀바인을 브뤼셀에 보내 남편을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은 덴마크 공주 크리스티나를 그려 오게 하였다.

덴마크의 크리스티나(왼쪽)와 클리브즈의 앤.
이 초상화에서 크리스티나는 수줍은 듯이 약간 돌아선 채 보는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보석이나 장식이 전혀 없는 검은색 상복은 오히려 지적이면서 단아한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매혹적인 눈은 이 여성에 대해 더 알고 싶게 한다. 정략결혼이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했던 헨리 8세는 이 초상화에 끌려 크리스티나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헨리 8세의 경력을 알고 있던 이 똑똑한 미망인은 그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헨리 8세는 다시 홀바인을 네덜란드에 보내 또 다른 신붓감인 클리브즈 공작의 딸 앤을 그려오라고 했다. 앤은 외모가 평범했다. 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홀바인은 화려한 의상과 아름다운 보석들로 치장한 모습으로 그렸다. 헨리 8세는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어 결혼하기로 했다. 그러나 앤이 영국에 도착한 날 실제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한 그는 곧 이혼했다. 뛰어난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얼마나 인물을 미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4] 법정에 선 미술품

입력 : 2009.05.26 23:16 / 수정 : 2009.06.01 09:13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뉴욕 맨해튼의 연방플라자 앞에 세워졌다가 철거된 리처드 세라(1939~)의 조각 '기울어진 호(弧)'는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세라는 1979년 미국 정부 총무처로부터 야외조각을 위촉받아 2년 후 약 36m 길이에 3.6m 높이의 거대한 조각을 완성했다. 활 모양으로 휘어져 서 있는 이 작품은 친(親)환경 재료인 코르텐 스틸로 만들었지만 외관상으로는 녹이 슨 것같이 보였다.

작품이 설치된 후 연방건물 직원들 사이에서 이 조각이 시야를 가리고 보기 흉하며, 먼 길을 돌아가게 하기 때문에 작품을 옮겨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미술은 작품 중심보다는 관람자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세라는 자신의 조각은 설치 장소를 고려해 제작한 것이므로 장소를 옮기는 것은 작품을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재판까지 간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작품의 통제권이 전적으로 소유자, 즉 총무처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1989년 이 작품은 철거됐다.

베로네제의 '레비의 집에서 열린 향연'.

세라는 적어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는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反)종교개혁이 한창이던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는 종교화의 적절성이 종교재판에서 일방적인 판결을 받는 일이 많았다. 베네치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제(1528~1588)는 1573년 재판에 회부됐으나 현명하게 대처한 경우다. 남아 있는 재판 기록을 보면, 재판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에 왜 어릿광대, 코피를 흘리는 사람,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 후 이단으로 여겨지는 독일인이 등장하는지 물었다.

베로네제는 자신도 작품을 자기 마음대로 구성하는 시인이나 궁정익살꾼(이들은 화가보다 사회적 위상이 높았다)처럼 자격을 갖췄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려 넣었다고 답변했다. 결국 그는 3개월 안에 자신의 비용으로 그림 내용을 바꾸라는 판결을 받았다. 베로네제는 이에 불복하고 그림을 고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종교화로 보이지 않게 그림 제목을 '레비의 집에서 열린 향연'으로 바꿔 버렸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3] 라파엘의 매력

입력 : 2009.05.19 23:09 / 수정 : 2009.05.22 16:47

'그란두카의 성모', 1505 년경.
미국 유학 시절 르네상스 미술을 가르치던 교수가 라파엘(1483~1520)의 작품은 나이가 들어야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요즈음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이뤘던 라파엘은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당시에는 그들과 동등하게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강렬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창조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신과 같은 인체를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현대에 와서도 대중적 지명도를 누리고 있는 반면, 라파엘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주로 거론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새롭게 창조하기보다는 다른 대가들의 작품에서 자신이 필요한 요소를 수용하고 종합했던 그의 탁월한 능력이 현대인에게는 높이 평가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504년, 미술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 온 젊은 라파엘은 성모자(聖母子)상을 많이 그렸다. 성모자상에서 라파엘이 기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내용은 종교적인 이야기보다는 인간 문화의 근본인 다정한 모성애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바로 르네상스 정신인 인본주의의 반영이기도 했다. 단순하고 평안하면서도 지적이었던 그의 작품은 1508년에 로마로 가면서 장대한 양식으로 변한다.

라파엘이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서재에 '아테네 학당'을 그리는 작업을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6세였다. 그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 그림은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과학자·예술가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리스 문명에 대한 르네상스인의 '오마주'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려진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위엄 있고 설득력 있는 동작으로 각자의 믿음과 학설을 전달하고 있다. 그림 속의 고전적 건축과 인물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완벽한 균형과 조화의 미를 보여준다. 강렬하고 개성적인 작품보다는 지성적이고 균형과 조화를 이룬 미술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이제야 라파엘의 미술이 이해가 되는 듯하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2]반 고흐와 고갱

입력 : 2009.05.12 22:39 / 수정 : 2009.05.22 16:49

 

생애가 작품만큼 관심을 갖게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며칠 전 신문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귀를 자른 것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동료화가 폴 고갱(1848~ 1903)이었다는 주장이 실렸다. 남부 프랑스의 아를에서 1888년 10월부터 두달을 함께 지내던 반 고흐와 고갱이 격한 언쟁을 벌였고, 반 고흐가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하자 고갱이 박차고 떠나버렸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면도칼로 잘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반 고흐를 이렇게 격분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에 있던 반 고흐가 화상(畵商)을 하는 동생 테오를 찾아 파리로 온 것은 1886년이었다. 같은 해 그는 이곳에서 5세 연상인 고갱을 만났다. 증권 브로커로 일하다가 35세에 화가가 된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젊은 화가들의 리더 격이었다. 얼마 후 반 고흐는 아를로 떠나면서 고갱을 초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기질 차이도 있었지만 미술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갱은 숙련된 소묘 화가인 앵그르와 드가를 좋아했고, 반 고흐는 고갱이 싫어하는 농민 화가 밀레를 좋아했다. 고갱은 구상을 미리 하고 기억과 상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했지만, 반 고흐는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물리적 세계와의 감정적 교류에서 영감을 받는 화가였다. 이런 차이는 언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귓불을 자르는 반 고흐의 첫 번째 발작을 촉발했던 것이다.


고갱과 같이 지낼 때 반 고흐는 자신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한쌍의 그림으로 그렸다. 반 고흐 자신의 의자에는 그가 늘 애용하던 서민적인 파이프가 놓여 있고, 고갱의 의자에는 지성과 상상력을 상징하는 책과 촛불이 있다. 자신의 의자는 거친 직선을 교차시켜 투박하게 묘사한 반면, 고갱의 의자는 장식적인 곡선과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의자 주인의 존재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이 그림들은 단순한 정물화를 넘어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왼쪽) 와‘빈센트의 의자’.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1] 아크나톤의 부활

입력 : 2009.05.05 23:20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지금 고대 이집트 미술품을 모은 '파라오와 미라'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서 목은 없어지고 몸체만 남은 아주 작은 조각을 보았다. 이 조각은 기원전 14세기 중엽에 재위한 신왕국 18왕조의 파라오 아크나톤의 '샵티'(지하세계에서 파라오 대신 노동을 하는 입상)였다. 이 조각의 앞에는 아크나톤을 의미하는 '카르투슈'가 새겨져 있다. '카르투슈'란 왕이나 왕조를 의미하는 상형문자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 끈 모양의 테두리를 말한다.

아크나톤의 원래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불룩한 배와 가슴, 부푼 눈두덩, 두꺼운 입술과 비죽 튀어나온 턱을 가진 이상 골격의 소유자였다. 여러 설이 있지만 순수한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결혼을 하던 이집트 왕가에서 나타난 일종의 유전병으로 추정된다.

그는 그때까지 평온하게 살아오던 이집트에서 과격한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가장 강력한 태양신 '아몬 레' 대신 유일한 신 '아텐'을 섬기고, 사람과 동물이 뒤섞인 모양으로 표현되던 신의 모습을 태양 원반으로 표시했으며, 아텐을 숭배하는 많은 신전을 세웠다. 자신의 이름을 아텐에게 복종한다는 뜻의 아크나톤으로 바꾼 그는 수도도 테베에서 아마르나라는 새로운 도시로 옮겼다. 새로운 변화는 아마르나 시기의 미술에도 보인다. 엄격하고 부동적인 모습의 인물들은 유연한 곡선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표현되었고 파라오 가족의 단란한 일상생활 같은 모습도 미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단한 파격이었다.

변화는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아크나톤이 죽자 그동안 권력을 잃어버렸던 사제들은 다시 수도를 테베로 옮겼고, 모든 기록과 미술에서 아크나톤의 이름을 지워버리거나 파괴해버려 그의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근대의 고고학자들은 아마르나를 발굴하면서 유물들을 찾아냈다.

그중의 하나가 현재 베를린의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네페르티티 두상이다. 아크나톤의 왕비였던 이 네페르티티 두상은 이집트 특유의 형식미와 아마르나 양식의 섬세한 곡선이 아름답게 혼합되어 있는 최고 걸작품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에서 본 아크나톤의 '샵티' 역시 역사의 파괴에서 용하게 남아 있는 조각상이다.

조선일보

◆Summer MBA / ⑩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GE가 130년 넘도록 장수하는 비결?
CEO 바뀌어도 끄떡없는 메커니즘 덕
지속성장 위해선 기업내 `창조적 메커니즘` 필수
리더능력ㆍ산업환경ㆍ핵심역량만으론 오래 못 가
로레알 `대결의 방`서 격의없이 전략토론
포스코 `고전읽기`로 인문학적 소양 길러
◆Summer MBA / ⑩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GE를 꼽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글로벌 불황 여파로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130여 년의 장구한 역사 속에 최고 위치를 지키고 있는 GE의 성공 비결을 알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기의 경영자로 평가받았던 잭 웰치 전 회장의 리더십은 GE를 성장시킨 상징적인 요소다.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을 기반으로 적기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다.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자금을 활용했고, 창의력 있는 인적 자원이 모여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GE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포스코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세계 대형 철강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의 힘은 한국형 리더십의 전형을 창출한 박태준 명예회장에게서 찾기도 하고 선진국에서 투자를 기피할 때 선행투자에 나선 데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포스코의 지속 성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 영속 기업의 조건

=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단기적으로 평균 이상의 초과이윤을 올릴 수는 있어도 이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규 경쟁자가 끝없이 진입하고 기존 기업이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초과이윤이 평균 수준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GE, P&G, 필립모리스, IBM은 물론 삼성, LG 등은 독점기업이 아님에도 장기간 최고의 위치를 유지해 왔다. 경영학에서는 이러한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전략`이라는 용어로 메웠다. 지금까지 경영학은 특정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해 왔다.

첫 번째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주체`인 최고경영자의 역량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잭 웰치, 빌 게이츠, 이병철, 박태준과 같은 존재가 기업을 성장시켰다는 이론으로, `경영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분석법이다.

두 번째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다. 오일쇼크가 전환점이었다. 경영자가 기업의 존속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업에 속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기업들이 외부 기회와 위협을 내부 강점, 약점과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대한 이른바 `SWOT` 분석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산업조직을 연구한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이 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경영학자였다.

그러나 신시장을 개척해도 모방하며 따라오는 후발주자를 막을 수 없는 법. 이에 따라 기업들은 `환경`보다 `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경영학자들은 경쟁자가 흉내낼 수 없고 외부에서 얻을 수도 없는 자원을 `핵심역량`이란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핵심역량도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핵심역량의 하나인 `지식`은 한때 모든 경쟁력의 근간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은 특정 기업 소유가 아니다. 지식은 1위에 오를 수 있게 할 수는 있지만 1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메커니즘 경영`은 여기서 출발한다. 기업의 경쟁우위와 장기적 성공을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요인을 간과할 뿐만 아니라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따라서 오랜 시간을 거쳐 기업 내에 구축된 운영원리를 분석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 창조적 메커니즘 구축이 성공 비결

= 메커니즘은 기업 내에서 주체가 환경을 선택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논리이자 이들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원리다. 주체, 환경, 자원을 통합하는 관점인 셈이다. 기업은 좋은 메커니즘을 창출하고 환경변화에 따라 발전시켜 나갈 때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잭 웰치 전 회장이 GE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제프리 이멀트가 새롭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지만 GE 위상은 큰 변화가 없다. 물론 GE 역시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타격을 받았다. 지난 30여 년간 큰 수익을 안겨줬던 GE캐피털이 대규모 손실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멀트 회장이나 경제적 위기라는 환경적 요소 또는 금융업이라는 포트폴리오에만 집중한다면 GE의 재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GE에는 실패를 문책하지 않고 귀중한 교육의 기회로 삼는다는 기업원리가 있다. CEO의 경영 방향 전환을 전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학습 메커니즘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마찬가지다. 제철보국의 사명감, 상의하달식 의사결정, 우향우 정신이 포스코에 내재된 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 신기술 개발, 문리 통섭형 인재 양성 등 글로벌 1위를 향한 열망도 크다.

메커니즘은 인과관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이 있다. 무엇이 기업 고유의 메커니즘인지 외부에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따라서 경쟁자가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삼성과 LG에는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른 메커니즘이 확고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21세기 CEO의 가장 큰 과제는 창조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메커니즘은 주체가 환경변화에 대응해 자원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학습되고 진화한다.

성공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했는지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위대한 CEO가 물러난 한참 뒤에도 `지속성장`이 가능한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 경영의 미래는 통섭에 달렸다

= 기업들이 고유의 창조적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선 고된 과정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특히 경영학이라는 학문 틀에만 갇혀 있으면 대동소이한 방법론만 제시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의 통섭이 있어야 혁신적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학은 인간 신체의 원리를 통해 기업구조 혁신에 대한 영감을 준다. 인간과 기업은 둘 다 장수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몸의 노화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세포 자체의 쇠퇴로 인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젊음의 관건은 조직 구조와 상호 교류다. 젊은 사람은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가 적절하게 배열되고 서로 교류를 하면서 운동이 활성화된 사람이다. 반면 늙은 사람은 늙은 세포가 집중되고 세포 간 운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젊은 조직은 경험이 많은 사람과 젊고 패기 넘치는 사람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조직이다. 이들 사이의 소통은 많으면 많을수록 기업은 성공한다.

로레알은 10년 전부터 본사에 `대결의 방`을 두고 있다. 하급 관리자도 이 방으로 초대돼 그들의 전략을 집행위원회와 논의한다. 여기에서는 불필요한 형식들이 제거되고 전략적인 대화만을 나누게 된다.

예술도 경영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 경영학 수업에서 한 반은 강의에 앞서 예술 공연을 보여주고 시작했고, 다른 반은 곧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곧바로 수업이 진행된 반에서는 기존의 방법론만 논의된 반면 예술 공연을 보고 토론을 진행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P&G의 `장소 메커니즘`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특정 프로젝트를 맡을 경우 먼저 업무에서 떠나 온갖 장난감과 놀이시설이 가득한 곳으로 떠난다. 서류 더미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증대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일주일만 생활하면 반드시 문제 해결책이 마련된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문리 통섭형` 인재를 강조하고 임원들을 대상으로 고전 읽기를 시작한 것은 생소한 시도였지만 최근 기업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경영의 미래는 이제 통섭과 컨버전스에 있다.

■ He is…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61)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해 기획부 실장, 국제지역원장, 경영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인시아드, 하버드대, 도쿄대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초청교수로 활동했고 경영전략, 국제경영, 경영혁신, 디자인경영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를 수행한 국내 경영학계 대표 학자로 꼽힌다. 2006년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이학, 공학, 의학 등 566개 학회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한다. 저서로는 `한국재벌연구` `이제는 전략경영시대` `기업의 환경창조메커니즘` `디자인혁명, 디자인이론` `제4의 전략패러다임-M경영` 등이 있다.

[정리 = 박종욱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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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17:00:01 입력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IT 업계 아웃소싱은 클라우드컴퓨팅으로
인터넷서 IT자원 빌려 사용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넷을 통해 IT자원을 수요에 따라 빌려 사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IT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IT 아웃소싱` 모델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IT자원과 인터넷이 결합된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제품은 더 이상 소유의 개념이 아닌, 필요한 만큼만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즉, IT자원과 인터넷 서비스의 결합이 이뤄졌고 고객 입장에서 관리비용의 절감 및 IT자원 활용의 극대화라는 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온라인 비즈니스의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을 통한 IT자원의 온디맨드(on-demand) 아웃소싱 서비스`로 볼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사용자들은 애플리케이션, 스토리지, 운용체계(OS), 보안 등 필요한 IT자원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 골라서 사용하게 되며 사용량에 기반해 대가를 지불한다.

사용자는 제공받은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인터넷이 연결된 단말기를 통해 데이터센터인 클라우드센터에 저장하고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원하는 시점에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클라우드(Cloudㆍ구름)라는 이름은 사용자들이 기존에 개인이 직접 관리하던 PC를 통해 수행하던 작업을, 컴퓨팅 인프라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구름 속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네이버 등 포털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웹메일이나 블로그는 물론, 웹하드 서비스나 웹호스팅 서비스도 클라우드 서비스의 한 부분이다.

아마존의 S3(Simple Storage Service)와 EC2(Elastic Compute Cloud)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07년 뉴욕타임스는 홈페이지에서의 기사 검색 서비스를 무료화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851년부터 1922년에 걸친 방대한 양의 기사를 PDF로 변환해야 했는데 발행부수는 무려 1100만건이나 됐고 데이터의 용량 또한 4TB(테라바이트ㆍ1TB는 약 1000GB)나 됐다. 이를 완료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비의 추가 구매 없이 아마존의 데이터센터에 있는 가상 서버와 스토리지 서비스를 적절히 활용해 단 하루 만에 작업을 마쳤다.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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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엔 껌딱지가 없는데… `수평적 아웃소싱`이 비결이죠
보안검색ㆍ터미널운영등 35개 업체에 맡겨
외주업체가 알아서 개선하게 서비스 협약
갑을관계 탈피 상생협력으로 경쟁력 높여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1992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단기간에 세계 1위 공항으로 성장시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출국 수속에서 실제 출국까지 최단 시간이 걸리며 비행기 연착률, 수하물 처리 시간 등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인천국제공항이 1위에 오른 비결은 공항 서비스에만 그치지 않는다.

연면적 51만4910㎡(15만평)에 달하는 탑승동 바닥에는 버려진 껌이나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다. 500개에 달하는 화장실도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공기 오염도 바닥청소 광도, 먼지까지 지표화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인천국제공항이 세계 1위 공항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결로 공사는 공항 건설과 마케팅 등 핵심 업무만을 담당하고, 시설 운영과 관리 업무는 100% 아웃소싱하고 있는 것이 꼽힌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은 여객터미널 운영 용역, 교통관리, 탑승교, 보안검색 용역, 공항소방대, 야생조수, 여객터미널, 토목시설, 조경시설, 자원회수, 승강 탑승, 수하물 처리, 자료관리 용역 등을 35개 회사 5558명(2008년 12월 현재)에게 아웃소싱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SLA(Service Level Agreementsㆍ서비스 수준 협약)를 체결해 SLM(Service Level Managementㆍ서비스 수준 관리)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 서비스 수요자와 아웃소싱 서비스 기업이 요구사항과 우선순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 갈등이나 분쟁을 줄이고 협약 내용에 따라 철저히 계약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의 아웃소싱이 처음부터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개항 초에는 정부 정책에 의해 추진됐기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천국제공항은 효율적으로 아웃소싱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창조적 아웃소싱`과 SLAㆍSLM 체계 도입을 검토했다. 컨설팅은 8개월 동안 진행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공사와 관련된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아웃소싱 업무를 SLA에 의해 관리해 성공 가도에 이르렀다.

◆ 창조적으로 아웃소싱하라

= 국내 기업에도 `아웃소싱(외주제작)`이 정착되고 있지만 인천공항공사처럼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기업은 많지 않다. 대부분 인력 파견이나 콜센터 아웃소싱에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반면 GE, 델컴퓨터, 델타에어라인, 아마존닷컴, 도요타자동차 등은 효과적인 아웃소싱으로 기업 경쟁력을 극대화해 여전히 글로벌 톱 기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 아웃소싱은 이론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적용하기엔 익숙지 않은 경영기법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은 모두 수직계열화하고 있으며 아웃소싱 업체에는 상생협력보다는 소위 `갑을 관계`라고 부르는 하도급업체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웃소싱을 대리생산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좋은 사업은 혼자 스스로 해야 한다(Just do it yourself)는 홀로서기 방식과 연구개발(R&D), 마케팅, 영업, 인사, 판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기능을 조직 내 모두 보유해야 한다는 자족주의 방식이 효율적인 아웃소싱을 가로막고 있다.

각 기업이 A에서 Z까지 모두 할 수 없다면 효과적인 `소싱(Sourcing) 전략`을 짜는 것은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 된다는 것에 대부분 기업이 동의하고 있다. 특히 기존 아웃소싱 방법론을 극복한 `창조적 아웃소싱`을 도입하면 비용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절감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생산, 판매, 관리 등 기업 내부에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부분을 내보내 고정적인 인건비나 운영비를 변동시키고 경기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균형성과지표(Balanced Score CardㆍBSC)를 활용한 분석 방법도 창조적 아웃소싱의 중요한 방법이다. 재무지표와 함께 핵심 역량의 분배와 집중 등 비재무지표를 동시에 평가해 업무 성과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아웃소싱을 통해 핵심 역량을 결집시키고 외부 기업의 능력을 내재화한다면 그 기업은 경쟁력 향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 창조적 아웃소싱 방법론

= 경쟁력 있는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특히 아웃소싱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아웃소싱 업자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해줄 것이란 생각은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창조적 아웃소싱을 위해서는 각 기업이 고유의 방법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자사의 핵심 역량을 분석하고 미래와 현재 역량의 차이를 토대로 타당성을 분석하고 실질적 아웃소싱 도입을 위한 소싱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창조적 아웃소싱은 사전 진단 및 아웃소싱 타당성 분석→아웃소싱 전략 수립→사업자 선정ㆍ이관→아웃소싱 운영ㆍ관리→만기(완료)의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계약서를 기술할 때 예상하지 못한 복잡한 상황을 포함하다 보면 전체적인 숲을 못 보게 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아웃소싱에서는 사업자 선정과 협상에 이르기까지 계약조건을 `가치제안`이라고 한다. 아웃소싱이 업무 대행을 넘어 신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가치제안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아웃소싱 업체들은 도입 시 10% 절감은 기본이고 최대 30% 비용 절감을 제시한다. 그러나 원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하면 비용이 오히려 증가됐다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는 업무 대상과 범위에 대해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숨겨진 비용(히든 코스트)을 찾아야 한다.

■ He is…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47)는 아웃소싱 분야와 서비스 사이언스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쌓았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시피대에서 MBA를 수료하고 뉴욕 버팔로 주립대학에서 정보시스템 경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서강대 경영대 교수로 임용된 후 현재는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과 지식서비스 R&D센터장을 맡고 있다.

IT아웃소싱리더스 포럼 회장,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 ITSMF 코리아 부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외부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 삼성SDS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등에 대한 아웃소싱ㆍ평가 업무를 진행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IT 매니지먼트, 서비스 사이언스, 아웃소싱, 서비스 수준 협약, 정보시스템 성과 측정, IT 운영관리 프로세스 등이다.

[정리 = 손재권 기자]

 

 

IT 업계 아웃소싱은 클라우드컴퓨팅으로

인터넷서 IT자원 빌려 사용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넷을 통해 IT자원을 수요에 따라 빌려 사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IT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IT 아웃소싱` 모델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IT자원과 인터넷이 결합된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제품은 더 이상 소유의 개념이 아닌, 필요한 만큼만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즉, IT자원과 인터넷 서비스의 결합이 이뤄졌고 고객 입장에서 관리비용의 절감 및 IT자원 활용의 극대화라는 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온라인 비즈니스의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을 통한 IT자원의 온디맨드(on-demand) 아웃소싱 서비스`로 볼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사용자들은 애플리케이션, 스토리지, 운용체계(OS), 보안 등 필요한 IT자원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 골라서 사용하게 되며 사용량에 기반해 대가를 지불한다.

사용자는 제공받은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인터넷이 연결된 단말기를 통해 데이터센터인 클라우드센터에 저장하고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원하는 시점에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클라우드(Cloudㆍ구름)라는 이름은 사용자들이 기존에 개인이 직접 관리하던 PC를 통해 수행하던 작업을, 컴퓨팅 인프라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구름 속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네이버 등 포털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웹메일이나 블로그는 물론, 웹하드 서비스나 웹호스팅 서비스도 클라우드 서비스의 한 부분이다.

아마존의 S3(Simple Storage Service)와 EC2(Elastic Compute Cloud)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07년 뉴욕타임스는 홈페이지에서의 기사 검색 서비스를 무료화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851년부터 1922년에 걸친 방대한 양의 기사를 PDF로 변환해야 했는데 발행부수는 무려 1100만건이나 됐고 데이터의 용량 또한 4TB(테라바이트ㆍ1TB는 약 1000GB)나 됐다. 이를 완료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비의 추가 구매 없이 아마존의 데이터센터에 있는 가상 서버와 스토리지 서비스를 적절히 활용해 단 하루 만에 작업을 마쳤다.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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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7 16:51:21 입력, 최종수정 2009.08.27 19:43:24

국내 첫 명품시계 전시회

오데마피게·위블로·브라이틀링…국내 첫 명품시계 전시회
13~15일 매경 세계지식포럼서

`오데마 피게, 위블로, 브라이틀링, 해리 윈스턴, 태그호이어….`

명품시계 마니아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브랜드들이다.

이들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보고 최근 명품시계시장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명품시계 전시회가 다음달 13일부터 15일까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매일경제신문이 다음달 13~15일 사흘간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에서 개최하는 `제10회 세계지식포럼` 부대행사로 열린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명품시계 브랜드들이 단독으로 전시회를 연 적은 있지만 여러 브랜드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본격적인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회는 스위스 바젤과 제네바에서 매년 열리는 고급시계페어처럼 명품시계 트렌드와 신상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는 최고가 시계에서 명품 스포츠시계까지 다양한 브랜드들이 참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선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 세계 3대 하이-엔드(high-end) 워치로 불리는 오데마 피게를 필두로 고급시계에 스포츠 감각을 접목시켜 스포츠럭셔리 시계라는 영역을 개척한 위블로가 참여한다.

또 속도ㆍ환율까지 계산해줘서 파일럿이 가장 사랑한다는 브라이틀링, 보석과 시계의 영역을 모호하게 만든 해리 윈스턴, 그리고 대중들에게 명품시계의 접근성을 가능케 한 매스티지(대중명품) 브랜드 태그호이어도 선을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는 브랜드 중 최고가 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로 불리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로 평균 4억~5억원대의 초고가 시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옥타곤(8각형) 형태에 8개의 나사(스크루)로 몸체를 고성시켜 외부충격을 받아도 절대 분해되지 않는 게 장점인 `로열 오크` 등이 나온다.

`위블로(HUBLOT)`는 1980년 창립자 카를로 크로코가 시계 제조에선 처음으로 고무 소재와 골드를 결합해 만든 시계다. 선박 현창(프랑스어로 `위블로`라고 함)을 모티브로 한 베젤을 비롯해 독창적인 케이스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크라운(용두)이 특징이다.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대명사로 떠오른 위블로는 승마, 요트 그리고 폴로 경기 등을 즐기는 유럽 상류층을 중심으로 알려진 브랜드다. 이번 전시에서는 큰 다이얼로 유명한 `빅뱅` 모델을 선보인다.

`브라이틀링(BREITLING)`은 파일럿을 위한 시계라는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도의 정밀한 기술을 갖춘 크로노그래프(시간을 기록하는 장치) 시계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창업자의 손자인 윌리 브라이틀링이 1952년 내놓은 `내비타이머`가 나온다.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은 화려한 보석들과 디자인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 귀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이 애용하는 보석 시계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출장과 여행이 잦은 여성들을 위한 듀얼 타임 워치인 `애비뉴 스퀘어드`를 비롯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영감을 받은 `애비뉴 컬렉션` 등이 소개된다.

최근 서울 청담동에 세계 최대 단독매장을 연 `태그호이어(TAG Heuer)`는 국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브랜드다. 이번에는 세련된 디자인의 `카레라` 라인을 비롯 수상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아쿠아레이서``포뮬러 1` 등의 제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오데마 피게를 수입하는 권영대 스타일리더 사장은 "세계적 석학들과 저명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지식포럼에서 예술품 영역에 도전하는 마스터피스 시계를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면서 "장인과 희소성의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는 고급 시계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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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6:55:13 입력, 최종수정 2009.09.30 07:46:26

◆명품시계 이야기 ◆ 파르미지아니

파르미지아니, 천재 시계복원가가 만드는 신흥 명품

미쉘 파르미지아니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아르마니와 프라다의 차이점은?

전자는 1세기 훨씬 이전부터 마구상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전통의 명품인 데 비해 후자는 당대 살아있는 톱디자이너들이 만드는 신흥 명품이라는 점이 다르다. 명품 시계에도 전통을 앞세우는 브랜드와 패션과 디자인을 앞세운 신흥 브랜드가 있다.

국내에 유입된 시계 중 최고가인 10억3000만원짜리 제품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파르미지아니는 이른바 신흥 명품이라 할 수 있다. 1976년에 첫선을 보였으니 30년을 막 넘은 브랜드다.

영국의 팝가수 엘턴 존과 같은 유명인들이 차고 나와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프랭크 뮐러처럼 남다른 브랜드를 찾는 시계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프랭크 뮐러가 고급시계 업계에서 알아주는 시계 명인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처럼 파르미지아니는 천재적 시계 복원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만든 시계다. 1950년생인 그는 스위스에서 매년 선정하는 최고의 마스터워치메이커 톱5에 올라 있으며, 현재도 생명없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시계를 복원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파르미지아니는 복원가가 만든 시계답게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미니트 리피트 등의 복잡한 기계식 장치가 들어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로 유명하다.

국내에 들어온 10억3000만원짜리 제품 파르미지아니의 `토릭 웨스트민스터 로즈골드` 제품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다. 이 제품은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의 종소리를 그대로 구현한 게 특징. 시계 내부 4개의 공이 각각 다른 4가지 소리를 내면서 15분 간격, 1분 간격, 1초 간격으로 소리를 들려준다. 시계 측면에서 공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디자인했다. 또한 투르비용(중력에 의해 생기는 시간의 오차를 줄여주는 기술)을 1분에서 30초로 줄여 정확성을 가미했다. 다른 명품시계에 장착된 투르비용은 1분에 한 바퀴씩 회전하는 데 비해 `토릭 웨스트민스터`는 투르비용 시간을 1분에서 30초로 줄였다는 것.

파르미지아니 제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시계와 손목 사이가 뜨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계 옆면에 러그(밴드)와 케이스가 연결되는 부분인 프로파일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기 때문. 또한 시계의 핵심부품인 무브먼트부터 핸즈(시계바늘), 다이얼, 케이스, 작은 나사, 헤어스프링(시계동력을 주는 머리카락처럼 생긴 부품), 밸런스 휠, 그리고 가죽 밴드까지 전 제품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다. 연간 생산량은 5000개로 한정돼 있다.

대표적 제품에는 `토릭 웨스트민스터`와 `부가티` 라인이 있다. `토릭 웨스트민스터`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들어가 있는 기능 중심적 제품. 과거 시계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에 클래식하고 디자인 면에선 전위적(아방가르드)이고 독창적이다. 최근 출시된 `부가티`는 스포츠카인 부카티 베이런과 협업으로 만든 제품.

자동차 엔진 모양으로 생긴 디자인이 특징이다. 전 세계에 10개만 한정 출시됐으며 국내에도 1개가 들어와 있다. 가격은 4억원 정도다. 파르미지아니는 1997년 유럽의 부동산ㆍ미술품경매회사인 산도스에서 인수했으며,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제품 개발만 하고 있다. 국내에는 올해 들어왔으며 갤러리아 명품관과 롯데 에비뉴엘 명품관 2곳에서 취급한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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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18:04:02 입력, 최종수정 2009.09.24 18:49:58

◆명품시계 이야기 ◆⑦ IWC(International Watch Co)

IWC,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시계
◆명품시계 이야기 ⑦◆

스위스 시계 `IWC(International Watch Co)`를 한국어로 풀면 `국제시계회사`다. 바셰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처럼 공동 창업자 이름을 따거나 브레게처럼 유명한 캐비노티에(시계 장인) 이름을 딴 시계와 느낌부터 다르다.

IWC가 무역회사 같은 이름을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IWC는 1868년 당시로선 처음으로 스위스인이 아닌 미국 사업가가 스위스 시계를 국제무역을 통해 미국에 유통시키기 위해 만든 브랜드다.

당시 스위스 시계는 유럽 상류층에만 유통됐을 뿐 신대륙인 미국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F A 존스는 가장 공학적이고 정밀한 시계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엔지니어링 강국인 독일에 인접한 스위스 북동부 샤프하우젠 지역에 회사를 설립했다. 대부분 시계공장이 프랑스어권인 제네바 인근에 밀집한 것과 차별된다.

정밀함을 최우선으로 치는 IWC를 대표하는 시계는 1930년에 나온 포르투기즈다. 포르투기즈는 포르투갈 해상 사업가들이 항해 전용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서 나온 시계다. 그래서 명칭이 포르투기즈(포르투갈 사람들)다. 이 시계는 당시 시계업자 사이에 금기시되던 포켓워치 무브먼트를 최초로 손목시계에 사용해 만든 것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정확도와 정통성이 있는 포켓워치를 귀하게 여겼고, 손목시계를 차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IWC는 손목시계의 미래를 내다봤고 훨씬 비싸고 정교한 포켓워치 무브먼트를 손목시계에 과감히 사용했던 것.

1930년대에 나온 `포르투기즈`는 9시 방향 초침판과 3시 방향 파워 리저브 디스플레이(태엽을 최대한 감았을 때 동작시간을 보여주는 창)가 놓여 있는 모습이 부엉이 눈처럼 보인다고 해 `부엉이`이라고 불리며 IWC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가격은 스틸이 1300만원, 골드 소재가 2000만~3000만원 정도다.

IWC의 대표적 해상용 시계가 `포르투기즈`라면, 항공용으로는 `빅 파일럿`이 있다.

이 시계는 IWC가 파일럿을 위한 시계를 1936년에 선보인 뒤 4년 후 나왔다. 포켓워치 무브먼트와 조종사들이 장갑을 낀 채 태엽을 감을 수 있도록 크고 묵직하게 만들어진 크라운(용두) 그리고 비행복 위에 착용할 수 있도록 넉넉한 길이의 스트랩이 달린 `빅 파일럿`은 다이얼 사이즈가 55㎜로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손목시계였다.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인 빅 파일럿 크기는 46㎜(1600만원 선)다.

올해 IWC는 `빅 파일럿` 제품 중 두 세대가 함께 착용할 수 있는 시계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파일럿 워치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로듐 소재를 다이얼에 사용한 이 시계는 뒷면에 조종사와 부조종사 이름칸을 만들어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새길수 있게 한 점이 특징이다.

[김지미 기자]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 명품시계 이야기◆ ⑤ 바쉐론 콘스탄틴

35억원 시계로 기네스북 올라

◆ 명품시계 이야기 ⑤ 바쉐론 콘스탄틴 ◆

"3년 전 바쉐론 콘스탄틴의 스켈레톤 퍼페츄얼 캘린더 시계(2억원대)를 샀습니다. 안에 시계가 돌아가는 장치가 훤히 보이는 제품입니다. 좁쌀보다도 작은 수백 개의 부품마다 `Vacheron Constantin`이라고 적혀 있었죠. 그걸 사람 손으로 일일이 새겨넣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시계가 아니라 작품, 사람의 땀과 기가 들어가 있는 컬렉션이라고 봐야죠."

어느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마니아의 얘기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와 함께 세계 3대 고급시계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254년의 역사를 지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메이커다.

반세기를 다섯 차례나 넘어온 오랜 브랜드답게 바쉐론 콘스탄틴은 역사, 기술,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최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893년 바쉐론 콘스탄틴의 캐비노티에(시계장인)였던 조지 아우구스트 레쇼가 개발한 팬토그래프 기계는 현대 시계기술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무브먼트(핵심적 시계부품)를 사람 손으로 만들다 보니 불량품이 많이 나왔는데 정확한 계측기능을 지닌 팬토그래프가 만들어져 정확한 부품의 연속적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

1955년에 출시된 `패트리모니 엑스트라 플레이트`는 두께가 불과 1.64㎜밖에 되지 않아 가장 얇은 기계식 무브먼트라는 기록을 세웠다. 1979년에 나온 35억원짜리 `칼리스타`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골드 주괴로 만든 후 130캐럿의 에메랄드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이 시계는 만드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칼리스타`의 맥을 잇는 시계가 `칼라 더치스`다.

이 제품은 다이아몬드 9캐럿이 162개, 11.63캐럿이 182개가 들어가 있다. 보석들은 바게트형, 직사각형, 트래피즈 등 다양하게 커팅돼 있다. 18K 화이트골드 케이스 위에 트래피즈컷 다이아몬드를 입힌 이 시계의 가격은 수십억 원대를 호가한다. 시계라기보다는 시간을 볼 수 있는 보석 브레이슬릿(팔찌)에 가깝다.

왼쪽에서부터 칼리스타, 칼라 더치스, 뚜르 드 릴
지난해 출시한 `케드릴`은 `나만의 맞춤시계`를 만들 수 있는 비스포크(맞춤형) 제품이다. 케이스 구조가 7개 부분으로 되어 있고 세 종류의 금속(핑크 골드, 팔라듐, 티타늄)과 세 가지 다이얼 극비 보안 출력 기술이 들어가 있다. 모두 400가지의 맞춤시계 조합이 가능하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 당대 이름을 날리던 시계장인인 장 마르크 바쉐론과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 프랑수아 콘스탄틴이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다. 4개의 화살촉 끝을 붙여놓은 듯한 `말테 크로스` 로고로 알려져 있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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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0 16:38:15 입력, 최종수정 2009.08.21 15:32:24

◆명품시계 이야기 ◆ (4) 롤렉스

[명품시계 이야기] 손목위 성공한 남자의 증표 `롤렉스`

시계를 손목 위에 얹을 생각을 누가 언제 했을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가지고 다니는 시계는 회중시계뿐이었다. 최초 개발자가 알려지지 않은 손목시계를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차고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여자 팔찌를 찬 것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였고, 크기가 작아 회중시계만큼 시간이 정확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업 수완이 뛰어난 독일 출신 시계업자 한스 빌스도르프는 손목시계가 시간만 정확하다면 회중시계를 앞지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1905년 그는 작지만 정확한 스위스산 무브먼트를 장착한 손목시계를 만들어냈고, 짧고 부르기 쉽도록 `롤렉스`라고 이름붙였다.

롤렉스 손목시계는 시계 역사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1970년대 사람들이 기계식 시계를 버리고 일본제 전자시계로 바꿔 찼듯이, 당시 사람들은 회중시계 대신 롤렉스로 대변되는 손목시계를 차기 시작했다. 급기야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손목시계 생산량이 회중시계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오이스터 퍼페추어 데이트 저스트
다른 많은 시계업자들도 손목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롤렉스는 기술적인 면에서 그들보다 한발짝 앞서나갔다.

크로노미터(시간을 기록하는 장치) 인증 손목시계가 그 증거다. 1914년 당시 항해용 큰 시계에만 크로노미터 인증을 주던 영국 KEW천문대에서 손목시계로는 처음으로 롤렉스가 A등급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것.

롤렉스는 손목시계지만 내구성이 강하고 정확하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 시계 브랜드 중에서 크로노미터 인증을 가장 많이 받은 브랜드가 롤렉스이기도 하다.

1927년 롤렉스는 또 한 번 히트를 한다. 영국 런던 여성 속기사였던 메르세데스 글리츠가 영ㆍ프 해협을 헤엄쳐 횡단할 때 롤렉스는 신제품 방수시계 `오이스터`를 그녀에게 협찬했던 것. 글리츠는 15시간15분에 걸쳐 영ㆍ프 해협 횡단에 성공했고, 그녀가 착용한 롤렉스 시계는 아무 이상 없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시드웰러 딥시
`오이스터`는 물과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시계통 금속을 이음새 없이 통째로 깎아 만들었고, 시계 용두(크라운)를 잠수함 해치처럼 나사 모양으로 이중 삼중으로 잠그도록 고안한 시계다. 언론은 평범한 여성의 위대한 도전에 경의를 표하면서 신기하고 놀라운 방수시계도 함께 보도했다.

이후 롤렉스 효자 제품이 된 `오이스터`는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영구회전자 퍼페추어 기능을 추가했고, 날짜가 자동으로 맞춰지는 `데이트 저스트`, 날짜와 요일이 표시되는 `데이-데이트` 등 신기술을 더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현재 롤렉스에서 가장 잘나가는 시계가 바로 `오이스터 퍼페추어 데이트 저스트`(스테인리스스틸은 600만원 선)다.

롤렉스 하면 전문가를 위한 시계로도 유명하다.

1000가우스의 강한 자기장이 있는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밀가우스는 통신ㆍ항공우주산업 분야에서 근무하는 전문기술자를 위해 만들어졌고, 다이버용 시계 시드웰러 딥시는 수심 3900m까지 방수가 되는 제품이다.

이 밖에 요트 경기 선수를 위한 요트 마스터, 카레이서를 위한 데이토나, 비행기 조종사를 위한 듀얼 타임 기능의 `GMT 마스터` 등이 있다. 롤렉스는 `롤렉스` 시계 하나만을 보유한 단독 회사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가 있으며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가 사망하기 전에 세운 한스 빌스도르프 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세상에는 롤렉스보다 비싸고, 정확하고, 역사성까지 갖춘 고급 시계가 많다. 그럼에도 성공했거나 성공을 갈망하는 남성들은 롤렉스부터 찾는다. 묵직하고 단단함, 그리고 성공 이미지까지, 롤렉스는 시계의 벤츠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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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6 16:46:59 입력, 최종수정 2009.08.06 17:18:13

◆명품시계 이야기 ◆ (1) 파텍필립

돈 있어도 살수없는 파텍필립
4억원 호가…3년 기다려도 대기명단에도 못올라
◆명품시계 이야기 (1)◆

남자들에게 시계는 어떤 의미일까. 시계 마니아들은 "시계는 곧 인격"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수천억 원대 자산가가 롤렉스 빈티지를 차고 있다면 검소하고 소탈한 성품이겠거니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패션, 와인, 수입차에 이어 명품시계가 남성 트렌드에서 핫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휴대폰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시계를 안 찬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한편에서는 갖고 싶은 시계를 못 사서 안달하는 마니아층이 생겨나고 있다. 여성들이 명품 가방에 열광하듯 남성 세계에서도 명품시계 사랑이 시작됐다. 재미있고도 깊이 있는 명품시계 이야기를 연재한다.

일전에 스위스 시계박람회인 `바젤` 페어에서 만난 노신사는 자신을 `시계 컬렉터`라고 소개했다. 중소기업 오너인 그는 매년 바젤이나 SIHH(고급 시계 박람회)에 와서 새로 나온 시계들을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제품은 사간다고 했다. 그에게 최고 시계가 무엇인지 묻자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이라는 말이 바로 나왔다.

30대 초반인 한 젊은 사업가는 파텍 필립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워치인 `5078`(시가 4억원)을 사기 위해 3년 전부터 스위스 본사와 세 차례 접촉했다. 그 시계를 왜 사고 싶어 하는지, 그동안 어떤 시계들을 경험해 봤는지, 갖고 있는 시계 목록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인터뷰를 했다. 10대 시절부터 시계 매력에 빠져 `파네라이` 등 명품 시계를 수십 개 보유하고 있는 그였지만 아직까지 5078을 팔겠다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는 "구하기 힘들다는 에르메스 벌킨 가방은 웨이팅 리스트(대기자 명단)라도 있지 않습니까. 5078은 언제쯤 주겠다는 언급조차도 없으니 애가 탑니다"고 말한다.

그는 파텍 필립을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미닛 리피트(현재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가 뛰어나고, 무엇보다 클래식이 느껴지는 심플한 디자인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시계 마니아들은 최고 시계로 파텍 필립을 꼽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 자체적으로 만든 품질인증 실(Seal) 도입

= 최근 스위스 제네바를 기반으로 한 고급 시계업계에서 최대 이슈는 파텍 필립이 `제네바 실(seal)`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자체 품질인증 마크인 `파텍 필립 실`을 사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1886년에 탄생한 제네바 실은 시계 무브먼트에 `제네바`라고 새겨진 품질보증 인증마크다. 이 실을 받으려면 12가지 항목으로 된 까다로운 규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파텍 필립 측은 "우리는 이미 제네바 실이 요구하는 이상을 실행하고 있다"면서 "제네바 실보다 더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력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파텍 필립은 1839년 키 없는 시계를 최초로 만들어낸 아드리안 필립과 그 재능을 알아본 폴란드 망명 귀족 안토인 노베르트 드 파텍이 설립했다. 창업자 두 사람 이름을 따서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당시 괘종시계는 키를 끼워 태엽을 감았는데, 아드리안 필립은 지금과 같은 용두(크라운)를 개발해낸 인물이다. 1932년 미국에서 `헨리 스턴 워치`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현 경영주 스턴 패밀리가 인수했으며 오늘날 가족 경영과 소유를 겸한 몇 안되는 제네바 시계 제조회사다.

◆ 정교한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리더

=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파텍 필립이 시계 부문 왕좌를 지킬 수 있게 만든 분야다. 윤년이나 월의 길이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날짜를 바꾸는 영구 캘린더, 복잡한 구조로 된 크로노그래프, 지정된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별의 시간 측정과 일출ㆍ일몰, 12궁도를 포함하고 있는 천문학적 컴플리케이션을 담고 있다. 달걀만 한 시계 속에 그 많은 기능을 담으면서 하루 동안 최대 3초 이상 늦거나 빠르게 가는 것도 단 2초만 허용할 정도로 정확성을 지켜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올해 파텍 필립은 2006년 출시해 컴플리케이션 워치 중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5960 애뉴얼 캘린더` 신제품을 내놨다. 로즈골드 케이스에 어두운 실버그레이 다이얼 색상이 매력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 제품은 30일과 31일을 자동으로 구분하며 매년 3월 1일 오직 한 번만 날짜 조정을 하면 된다.

시계 마니아들은 1초도 차이가 나지 않는 디지털 시계 대신 매번 태엽을 감아주어야 하는 기계식 시계를 찾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살아 움직이지 못하니까."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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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17:02:22 입력, 최종수정 2009.07.10 08:54:52

◆Summer MBA / ⑧ 강성민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SCM 성패는 밀기와 끌기 활용하기 나름 
베네통, 흰색옷 먼저 만들어 인기끌면 염색
델, 부분조립품 활용 고객주문에 맞춰 생산
코카콜라엔터프라이즈, 차량경로프로그램 구축…年 4500만달러 비용절감
◆Summer MBA / ⑧ 강성민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1965년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의류 브랜드 베네통(Benetton).

설립자인 루치아노 베네통이 아코디언과 자전거를 판 돈으로 낡은 편물기계를 마련해 스웨터를 짜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전 세계 120여 개국에 7000여 개 매장을 보유한 글로벌 패션기업의 시작이었다.

베네통의 성공 비결은 요즘 용어로 보면 획기적인 공급망관리(SCM)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다수 의류업체는 미리 염색된 실로 옷을 만들었다. 이에 비해 베네통은 염색된 실로 제품을 생산하는 전통적 방법을 역발상으로 뒤집어 흰색 스웨터를 먼저 대량 생산했다. 이후 패션 트렌드에 맞춰 순발력 있게 염색을 실시하는 이른바 `후염 공정`을 도입했다.

흰색 원형 스웨터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안정적이며 제품 수명이 길어 재고 위험성이 낮았다. 당연히 비용은 절감되고 여기서 확보된 원가경쟁력으로 삽시간에 시장을 장악했다.

◆ SCM은 끌기와 밀기의 미학(美學)

= 삼성전자, 델, 월마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AMR리서치가 뽑은 `2009 SCM 톱 25` 보고서에서 10위 안에 든다.

세계 최고 수준 SCM 프로세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늘날 글로벌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반면 제품 수명주기는 더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고객 기대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SCM 없이는 절대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진리가 됐다.

기업들이 SCM에 목을 매는 것은 SCM이 고객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비용도 절감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수준을 높이면 매출이 늘고 비용을 줄이면 순이익이 늘게 돼 있다. 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고객 주문을 이행하는 스피드와 신뢰성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제품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재고 수준이 낮아야 한다. 재고는 곧 손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생산과 유통이 요구된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 상충된다는 것이다.

마치 반대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빠르게 주문을 이행하기 위해선 충분한 재고가 필요하며 제품이 다양하면 생산 효율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상충관계 속에서 최적의 공급체인은 과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삼성전자, 델, 월마트 등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공급망 관리 전략에는 `밀기ㆍ끌기`가 있다.

전통적으로 공급망은 `밀기식(Push-based)`과 `끌기식(Pull-based)`으로 분류된다.

베네통 사례로 보면 염색 전 공정은 밀기식 대량생산, 염색 공정부터는 끌기식 맞춤 공급망을 채택한 셈이다.

밀기ㆍ끌기 혼합 전략으로 베네통은 고객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면서 대량 생산의 장점도 취할 수 있었다.

◆ 두 전략의 장점을 접목하라

= 원칙적으로 밀기와 끌기를 구별하는 것은 고객의 주문시점과 생산시점 타이밍의 차이다. 쉽게 말해 밀기식은 재고생산, 끌기식은 주문생산을 뜻한다. 밀기식은 장기적 수요 예측에 근거해 생산과 유통을 결정한다. 고객 주문시점과는 무관하다. 끌기식에서는 생산시점이 주문시점과 같다. 실제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다.

두 전략의 장단점은 명백하다. 밀기식은 생산과 유통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스템이다.

일용품과 같이 수요가 일정하거나 소비자 요구가 크게 다양하지 않은 제품이라면 미리 수요 예측을 하고 제품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리드타임(lead timeㆍ제품이 생산 이후 소매상까지 전달되는 시간)이 길고 재고 수준이 높다는 약점이 있다.

반면 끌기식은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맞추는 데 역점을 두는 시스템이다. 수요 예측이 힘들고 고객 다양성이 크다면 끌기 전략이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리드타임이 길다면 끌기 전략은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선박은 생산시간이 길지만 고객 기대시간도 길기 때문에 끌기 방식이 가능한 것이다.

최근에는 밀기와 끌기를 혼합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밀기와 끌기 간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상류(생산 쪽)에서는 밀기, 하류(고객 쪽)에서는 끌기를 사용하는 전략을 통해 밀기와 끌기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혼합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전환점을 어느 곳에 둘 것인가다. 상류 쪽에 둘수록 공급망에서 밀기 전략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류에 둘수록 끌기 성격이 강하게 된다. 경계선에서는 수요 예측에 따라 재고를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혼합 공급망에서는 밀기와 끌기의 경계에만 전략적 재고를 두며 끌기 부분에서는 전혀 재고를 보유하지 않게 된다.

`차별 지연화(Postponement)`는 혼합 전략의 좋은 사례다. 개별 제품에 따라 차별화되기 전의 공통적인 원형제품을 먼저 생산한 뒤 실제 수요가 발생하면 즉시 완제품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모듈러(Moduler) 생산`은 조립만 하면 완제품이 되는 부분 조립품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각 모듈은 몇 가지 옵션을 갖기 때문에 조합을 통해 다양한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PC 제조업체인 델은 직접 주문생산으로 유명하다. 델은 모듈러 방식을 통해 주문생산 공정을 갖췄다. 최종 조립은 고객 주문에 따라 시작되지만 모듈 생산은 밀기 방식을 통해 효율적으로 조달되는 셈이다. 밀기와 끌기 혼합 전략은 순서적 최적화를 의미하는 전통적인 공급망관리 전략을 전체 최적화 전략으로 대체하는 대표적인 SCM 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SCM의 완성`물류최적화`

= 퀴즈 하나. 가로 24㎞, 세로 8㎞ 크기 정방형 시가지 안에 15곳의 편의점이 있다. 이곳에 차량 2대를 이용해 라면 300박스를 배송해야 한다. 편의점마다 원하는 라면 수량이 다르고 시가지 안에는 20개의 일방통행 길마저 존재한다. 도로 한 구간의 길이는 가로 4㎞, 세로 2㎞며 편의점은 구간 한가운데 있다.

어떻게 해야 최소 비용으로 배송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사람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더라도 쉽게 최적해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0.1초 안에 최적해를 구할 수 있다. 문제는 동일한 알고리즘을 이용해도 규모가 커지면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한다는 것.

하지만 이미 상당수 글로벌 기업이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제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2004년 코카콜라의 세계 최대 병입자 겸 유통업자인 코카콜라엔터프라이즈(CCE)는 차량경로문제(VRPㆍVehicle Routing Problem)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현재 CCE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미국 캐나다 유럽 등 430개 유통센터가 운용하는 차량 5만4000대의 최적 경로를 매일 결정하고 있다.

배송 경로를 산출할 때는 차량의 용량, 매장별 수요, 배송 가능 시간대, 도심 러시아워, 운전자 근무시간 등 다양한 제약 요소를 고려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CCE는 연간 4500만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배송 지연율을 기존 6.3%에서 2.4%로 줄이며 고객서비스를 크게 높였다. 물류 최적화가 비용 절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물류비가 2004년 11.9%로 일본(8.2%)이나 미국(9.5%)에 비해 높은 편이다. 특히 화물 수송에서 도로에 의존하는 비율이 2005년 기준으로 96.6%에 달해 일본(44.5%)이나 미국(84.3%)에 비해 높다.

물류 네트워크 최적화를 통해 비용을 줄이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아직까지 많은 기업은 단순히 생산지나 수요지 근처에 물류 거점을 설립하는 식의 전통적 방법에 의존해 물류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객 주문을 받아 언제, 어떤 순서로, 어떤 기계에서 제품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모듈과 물류 최적화를 위한 모듈을 통합 운영해야 할 때다.

최고경영자(CEO)들은 매출과 성장에 관심을 쏟게 마련이다. 그러나 매출 증가가 곧 수익성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서비스를 향상시키는 방법이 오히려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키우는 일이다.

■ He is…

강성민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51)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코넬대에서 경영학 석ㆍ박사를 취득한 뒤 1995년 가톨릭대에 부임했다.

1999년 국제 학술지인 `매니지먼트 사이언스`에 생산 스케줄링과 관련한 논문을 게재해 화제를 모았다. 전공인 생산관리 분야 가운데 스케줄링과 시퀀싱 등 계량적ㆍ과학적 접근법에 관심이 크다. 로지스틱스 학술대상, STX엔진 우수학술상 등을 수상했고 SK가스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부인은 W호텔 부총지배인인 배선경 씨.

■ <용 어>

공급망관리 (Supply Chain Management) = 부품 제조업체부터 제품 생산자, 유통망, 고객에 이르는 물류 흐름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파악하고 가장 원활한 흐름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통적 개념의 SCM은 재고와 리드타임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주로 공급 사이드에 중점을 뒀던 셈이지만 최근에는 생산법인은 물론 판매법인과 유통망까지 아우르는 정확한 수요ㆍ공급 예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정리 =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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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5 16:50:57 입력

CMA [Cash Management Account]

CMA [Cash Management Account]  
 
 요약
예탁금을 어음이나 채권에 투자하여 그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실적배당 금융상품.
 
 본문

어음관리계좌 또는 종합자산관리계정이라고도 한다. 고객이 예치한 자금을 CP나 양도성예금증서(CD)·국공채 등의 채권에 투자하여 그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금융상품이다. 투자금융회사와 종합금융회사의 대표적인 단기금융상품이나 2005년 6월부터 증권회사에서도 취급한다.

종합금융회사의 CMA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해당 업체가 부도가 나더라도 최고 5,000만 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으나, 증권회사의 경우에는 보호받지 못한다. 단, 종합금융회사를 인수한 증권회사에서 그 업무를 병행하여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는 CMA 상품을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유가증권에 투자한 뒤 남는 자금을 자동적으로 단기 고수익 상품에 운용하며, 은행의 보통예금처럼 입출금은 물론 자동납부·급여이체 등의 서비스 기능이 있고, 주식청약 자격이 주어진다. 단기간을 예치해도 높은 이자율을 적용받아 여유자금을 운영하는 데에 적합하다.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MMF [Money Market Funds]

MMF [Money Market Funds]  
 
 요약
투자신탁회사가 고객의 돈을 모아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여 수익을 얻는 초단기금융상품.
 
본문
'Money Market Funds'의 약자로 투자신탁회사가 고객들의 자금을 모아 펀드를 구성한 다음 금리가 높은 만기 1년 미만의 기업어음(CP)·양도성예금증서(CD)·콜 등 주로 단기금융상품에 집중투자하여 얻은 수익을 고객에게 되돌려주는 만기 30일 이내의 초단기금융상품이다.

은행의 보통예금처럼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상품으로 하루만 돈을 예치해 놓아도 펀드운용 실적에 따라 이익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단기자금을 운용하는 데 적합한 상품이다. 1996년 9월부터 허용되어 투자신탁회사에서 취급하고 있으며, 가입금액에 제한이 없어 소액투자자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 [讓渡性預金證書, Certificate of Deposit]

양도성예금증서 [讓渡性預金證書, certificate of deposit; CD]  
 
요약
제3자에게 양도가 가능한 정기예금증서.
 
본문
현금지불기(cash dispenser:CD)와 구별하기 위하여 NCD라고도 한다. 은행이 정기예금에 대하여 발행하는 무기명의 예금증서로 예금자는 이를 금융시장에서 자유로이 매매할 수 있다.
1961년 미국의 시티은행을 비롯한 대은행에서 주로 증권시장으로 유입하는 기업의 여유자금을 흡수할 목적으로 CD를 발행한 이래, 미국에서는 대규모로 발행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1968년 10월부터, 일본에서는 1979년 5월부터 CD가 발행되었다.

미국 CD의 액면은 당초 10만 달러 이상의 대계좌의 것이 많았으나, 후에 그 이하의 소계좌 증서도 발행되었으며, 기간은 30일 이상으로 1년이 넘는 것도 있으나 대개는 90∼180일이고, 금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정하는 최고금리의 범위 안에서 각 은행의 재량으로 결정되는데 기간이 길수록 높다.

또한 정기예금증서에는 양도가 가능한 것 외에 양도가 불가능한 것도 있다. 한국의 경우 CD와 유사한 성격의 무기명 예금증서라는 것이 있었지만, 정식으로 CD가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6월부터였고, 최저예금액은 제한이 없지만 500만 원이 일반적이고 1,000만 원인 은행도 있다. 예치기간은 최저 30일이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멘토링']

"3대째 가업… 기업문화 바꿔 성장하는 회사 만들려면?"

 

입력 : 2009.08.21 16:52 / 수정 : 2009.08.21 19:31

"현장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세요 적당히 일하는 직원은 엄하게 야단을"

이나모리 가즈오는 세이와주쿠(盛和塾)라는 경영 아카데미를 통해 기업인들이 직면하는 경영상의 문제에 대해 '경영 카운슬링'을 해주고 있다. 문답 내용은 매우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다. 카운슬링 내용은 책으로도 묶여 나왔는데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경영을 묻다〉(비즈니스북스)와 〈경영의 원점,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서돌) 등이 그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경영을 묻다〉에 소개된 카운슬링 사례를,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해 소개한다.


저희 회사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연육(어묵의 재료) 제품과 냉동식품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또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말린 염건물을 자사 브랜드로 제조하고 있습니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며, 2년 전에는 14억엔, 작년에는 13억엔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상품 구성을 바꾸었지만, 이익은 오히려 점점 줄어들어 걱정입니다.

저희 회사 직원들은 업무 수행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직원들이 회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변명만 내세웁니다. 직원들의 적극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연초에 경영 방침 발표회를 열고, 현장 간부를 대상으로 매일 라인별 조회와 월별 제품 검토회 등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사외 연수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분기에 매출이 15% 증가하고, 경상이익도 약 3000만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저는 긍정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행동으로 전 직원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기업문화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항상 창의적으로 생각하자! 항상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행동지침을 제시하고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성과가 없습니다. 현재 저는 지역 모임이나 예정에 없는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쫓기어 일에 집중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직원들이 진심으로 납득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요?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자신의 경영 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영 모임 세이와주쿠(盛和塾)에서 기업인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다. /NHK 화면 캡처

당신은 경영에 대해 상당히 많이 공부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경영 이념과 이상적인 회사 상(像)을 머릿속에서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 회사는 OEM 업체이기 때문에 자사 브랜드로 생산·판매하는 회사와 비교해 20~30% 싸게 납품해야 합니다. 일반 연육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와 똑같은 원료를 사들여서는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좋은 재료를 다른 회사보다 더 싸게 구입해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1인당 생산액, 즉 생산성입니다. 직원들이 다른 회사보다 몇 배나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제품 원가가 다른 회사와 똑같아집니다. 그래서는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익은 현장에서 나옵니다. 경영자인 당신이 현장에 가야 합니다. 값싸고 좋은 품질의 원료를 구매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트럭을 운전해 몇십 ㎞ 떨어진 구매처를 찾아가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승용차를 몰고 있다면, 그것을 팔아 트럭을 사십시오.

인재 육성 역시 매일 매일 경영 현장에서 추구해야 합니다. 연육 제품 생산 현장을 보세요. 조미료 같은 재료를 잘못 보관해 내용물이 줄줄 새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에 대해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라고 엄격하게 추궁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원료 관리를 소홀히 하면 원가가 올라가니까요.

결국 경영자 자신이 현장을 잘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아무튼 10%의 이익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이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직접 현장에 가서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내용은 정확해야만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일에 정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지역 모임이나 내방객에 시간을 내주어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익을 내기 위해 당신이 매일 현장에 나가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사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쓸데없는 것까지 조사해서 잘 알고 있지 뭐야. 예전에는 현장에 오지 않았는데, 요즘에 일요일까지 현장에 나와서 상자를 열어보는 통에 대충 일하던 것이 모두 들통났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합니다.

당신 회사처럼 작은 기업에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사장이 되려면 먼저 현장에서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고서 추운 겨울에도 허드렛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현장의 어려움도 모른 채 당신은 사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학을 나오자마자 낙하산으로 사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사장이 된 후부터라도 좋으니 현장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익을 내야만 하는데도 직원들은 그 대답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에게 해답을 줄 사람은 오로지 당신밖에 없습니다. 경영자는 간부의 몇 배나 일하고 몇 배나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경영자가 현장을 잘 아는 상태에서 큰 소리로 추궁하기 시작하면, 직원과 경영자의 관계가 멀어지고 분위기가 껄끄러워집니다. "꼭 저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하나?"라는 불만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마음을 써서는 경영을 할 수 없습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굳게 먹고 꾸짖어야 합니다. 야단을 치면 감정이 상하고 분위기도 나빠집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엄하여야 하는 걸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경영이념과 기업문화가 필요합니다.

교세라의 경영이념은 "전 직원의 정신적·물질적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류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직원들의 행복을 지키고자 하기에 나는 적당히 일하는 직원들을 엄하게 야단치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나 혼자 돈을 벌기 위해서 여러분을 혹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대우를 개선하려 하기 때문에 나는 더 엄하게 꾸짖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직원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직원들을 엄하게 야단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1/2009082101385.html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썩어가는 자본주의, 자본주의(慈本主義)가 구하리니…"

 

입력 : 2009.08.22 03:44

'살아있는 경영 神'의 일갈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인터뷰
"CEO는 배 부르면 사냥 않는 사자의 절도 배워야"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했던 것이 자본주의지만, 그것이 지나쳐 계속 편리한 것만을 추구한 결과가 이번 금융위기를 낳았습니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인류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77)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일본의 이 원로 경영인이 마침내 인터뷰를 승낙했을 때 기자는 마음이 들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히며, '살아 있는 경영의 신(神)'으로까지 불리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27세 때 맨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전자부품회사인 교세라와 일본의 SK텔레콤 격(格)인 민간 이동통신업체 KDDI 두 대기업을 창업했다. 두 그룹을 합치면 종업원 7만6000여명에 매출이 4조4000억엔(약 58조원)을 넘는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일본 재계의 큰어른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미국에서 기업인들이 가장 만나서 의논하고 싶은 인물이 워런 버핏(Buffett)이라면, 일본에선 단연 이 사람이다. 그의 경영 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시작된 경영 모임 세이와주쿠(盛和塾)에서 그의 강연이 끝나면 젊은 기업인들이 그를 빽빽이 에워싸고 차례로 질문을 던진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서 그를 만나는 의미가 남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윤리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른 지금, "땀 흘려 번 돈만이 진짜 이익"이며 "일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영혼을 닦기 위한 수양의 장"이라는 그의 동양적 경영 철학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는 이윤 추구와 주주 중심주의,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서구식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이상의 '레종 데트르(불어로 존재 이유란 뜻으로 그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영의 베이스엔 거래처, 종업원, 고객 모두를 사랑해 모두가 잘돼야 한다는 자비(慈悲)의 마음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 동안 '자비'라는 말을 다섯 번도 넘게 썼다. 그는 서구 기업 CEO들이 거액의 연봉을 받는 데 대해 "과거 전제 군주나 할 일"이라고 목소리 높여 비판하며, 성과급과 인력 구조조정에도 반대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하지만 그는 늘 원대한 꿈을 꾸었고 일에 관한 한 양보가 없었던 집념의 경영인이다. 그는 기술 개발을 위해 20년간 새벽 서너 시경에야 사무실을 떠나 '미스터 a.m.(오전)'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내가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일"이라고도 했다.

'아메바 경영'으로 대표되는 이나모리식 조직 관리는 관리에 강하다는 도요타나 삼성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지독하고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아메바 경영이란 회사 전체를 20명 이하의 소규모 조직으로 쪼개 독립 채산제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결산을 해서 아메바별 채산이 다음날에는 모두 공개된다. 실적이 떨어진 부문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의 사상의 토대는 불교에 있다. 그는 199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머리를 깎고 불가(佛家)에 입문해 세계 경영계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다이와(大和)라는 법명을 받고 탁발 수행까지 했지만, 이듬해 "개인의 철학 추구는 잠시 늦추고 국가의 일에 비중을 두고 싶다"면서 속계로 되돌아왔다.

그의 경영 철학과 인생관을 담은 책들은 국내에도 여러 권 번역돼 출간됐다. '카르마 경영'은 2006년에는 삼성경제연구소, 올해는 LG그룹 CEO들이 각각 선정한, 여름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에 포함됐다. 인간은 무엇인가에서부터 출발하는 그의 경영 철학은 평범하면서도 깊은 진리를 담고 있어 진한 울림을 준다.

그와의 인터뷰는, 일본에 신종플루가 확산된 탓에 몇 달간 연기됐다가 최근 교세라 교토 본사에서 이뤄졌다. 20층 사옥의 18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옆 접견실이었다. 옆쪽 창으로 교토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교세라와 KDDI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을 창업한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 하지만 그는“인생이란 극장에서 교세라 창업자라는 역할이 우연히 맡겨졌을 뿐,그 성공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세이와주쿠에서 후배 기업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소기업 경영자 중에서 경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영이란 것은 아무리 작은 식당을 하고, 야채를 팔아도 모두 부기(簿記)나 회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부기나 회계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얼핏 보면 이익이 나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니까 번 돈이 바로 원재료비로 둔갑하기도 하고 설비투자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수익이 안 남는다, 자금이 모자란다, 이렇게 돼버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우선 부기, 회계부터 배우고, 혼자서 안 된다면 회계사에게 맡겨서라도 확실히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둘째, 경영자는 어떻게든 이익을 내려 하고, 또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데도 길이 있습니다. 나 혼자 많이 벌면 좋겠다는 자기애(自己愛)만으로 돈을 벌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거래처와 종업원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오래갑니다. 또한 경영자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기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불타오르는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정말 인격밖에 없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맨 오른쪽)이 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맨 왼쪽)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교세라 제공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질문을 하면 눈을 꾹 감고 듣곤 했다. 처음엔 노령에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날아온 외국인 기자가 하는 질문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듣고, 답을 생각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질문하는 기자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에겐 이 인터뷰도 마음을 닦기 위한 수행의 일부인지 모른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너무 한가한 말 같기도 합니다.

"결코 느긋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경쟁이 아주 치열하고,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 경영은 매우 힘든 일이니까 자신의 회사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의 일을 곁눈질 않고, 자는 동안에도, 죽을 정도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불교에서 가르치는 자비(慈悲)라고 하는, 남에 대한 배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함과 동시에 거래처, 종업원, 고객 모두를 사랑해 모두가 잘돼야 한다는 그런 기분을 베이스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자본주의를 약육강식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적자생존(適者生存)이 더 올바른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을 보더라도 사실 약육강식이란 것은 의외로 흔하지 않습니다. 다만 환경에 맞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가의 한 포기 풀과 한 그루 나무까지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가뭄이 와도 비가 올 때까지 견뎌 보자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말라붙어서 시들어 버립니다. 인간처럼 '좀 더 편히 살자', '좀 더 호강을 누리자' 이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적자생존이란 의미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인데, 다만 일할 때의 마음은 자비와 배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불교에서 배운 훌륭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타(利他)'의 경영 이념을 정립했지만, 그가 창업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가 1959년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설립하고 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고졸사원 11명이 혈서를 들고 그에게 찾아와 임금 인상과 장래 보장을 요구했다. 그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마당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가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자네들을 배반한다면 그때는 나를 죽여도 좋다"고 사흘 밤낮으로 설득했다.

그래서 그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는 그때 큰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회사를 차렸다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의 생활을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제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처지였는데 말이다. 그는 회사란 직원과 사회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몇 주간의 고민 끝에 '회사는 내 기술을 세상에 알리는 무대'라는 생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전 직원의 행복을 추구하고, 인류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경영 이념을 정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식 경영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식 경영의 문제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원래는 미국도 부지런히 무언가 물건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지난 10년 동안엔 금융에 특화해 머리를 쓰고 돈을 굴려서 큰 이익을 얻고자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력을 하지 않고 큰 이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금융공학을 통해 금융 신상품, 파생상품을 만들었고, 이것을 넓게 운용하고 레버리지를 이용해 원금의 몇 십 배에 이르는 막대한 이익을 올리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번 돈을 버니 점점 더 돈을 벌려고 하고, 욕망은 더욱 커져 갔지요. 힘을 들이지 않고 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극단적으로 발전돼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물론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죠. 자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근대문명도 그렇고요. 좀 더 풍요로워지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근대 물질문명을 이뤘습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너무 지나쳐 계속 더 편리한 것을 추구했던 인류의 '업(業)'이 이번 위기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선 자본주의 그 자체가 문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공산주의로 바꿀 수도 없고, 다른 시스템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를 해나가되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세, 마음, 이것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거기에도 분명히 절도(節度)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지나친 면에 대해서는 법률이나 규칙을 바꾸는 것도 각국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것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욕망이 있는 한, 아무리 규칙이 있어도 부족합니다. 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이와 같이 자연의 절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대기업 CEO나 임원의 거액 연봉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높은 연봉은 그들의 능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확실히 회사가 큰 이익을 냈다면 리더인 CEO와 일부 고위 임원들의 역할이 컸을 것이므로 그만한 돈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금융계에선 극히 소수의 사람이 머리를 써서 거액의 돈을 운용함으로써 거액의 이익을 버니까요. 예를 들어 불과 100명이 수조엔을 굴려 수천억엔을 법니다. 그래서 1000억엔을 벌었다면 그 1할인 100억엔을 받아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900억엔이 남으니까요.

제조업체에도 그런 생각이 확산됐습니다. 교세라는 연간 수천억엔 정도를 벌지만, 전세계 6만명의 종업원이 벌어들인 것이죠. 그러나 그런 이익이 나면 '톱인 내가 1할 정도는 떼도 되지 않나' 생각해 제조업체에서도 거액의 돈, 즉 일반 종업원의 수십~수백배의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러나 과거 봉건주의나 전제주의 시대의 독재국가라면 몰라도 민주주의라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으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민주주의가 되어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사고방식은 과거 봉건주의 시대처럼 폭력적인 독재자, 전제군주가 하던 짓과 거의 같은 일들을 지금 다시 시작했어요. 이처럼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가 사회에 거대한 격차를 만들어 낸 것은 사회의 변화를 수렴하는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CEO의 끝없는 욕망이 확산돼 지금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말에 '만족을 안다'는 게 있는데, 이런 겸손한 마음, 그리고 절도(節度)를 아는 마음이 지금 리더들에게 요구됩니다. 위에 선 사람, 즉 리더라는 것은 자기 희생을 보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사람이 리더가 돼서는 안됩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리더가 된 조직은 불행한 조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에 대해서도 반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실적이 좋은 직원에게 상여금을 많이 주면 인센티브가 되겠죠. 그러나 문제는 항상 실적이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적이 좋아 월급이 오를 때는 좋지만, 노력을 했는데도 실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월급이 올라 그에 맞게 생활해 왔는데, 실적이 나빠 갑자기 월급을 반으로 줄인다면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했는데도 경기가 나쁘다거나 시장이 좋지 않아 실적을 올릴 수 없다면 속상하겠죠. 그리고 성과급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 격차가 생기면 팀워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감정을 도외시한 성과주의는 좋지 않습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표창해서 명예를 줍니다. 또 개인의 월급을 갑자기 크게 올려주지는 못해도 전체적으로 회사의 실적이 좋아지면 자신의 상여금도 올라갑니다. 다시 말해 성과주의가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열심히 해서 모두에게 귀속되는 것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표창하는 정도로 보상이 될까요? 그것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해 돈을 많이 주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다행히 우리 회사엔 그런 사람이 적습니다. 또한 저희도 회사에 이바지한 사람에게는 승진을 시켜준다든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후한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비의 마음입니다. 자기애가 아니라 말입니다. 주위의 사람과 성과를 나누는 기쁨, 이것이야말로 질(質)이 다른 기쁨이고, 아름다운 기쁨입니다."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전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의 바람이 일었습니다. 어려운 기업 환경 속에서 감원(減員)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불경기가 되면 매출이 줄고 적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매출은 줄어드는데도 고정비는 그대로이면 적자를 보게 되죠. 그리고 고정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에선 구조조정에 나서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저는 종업원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므로 어려울 때도 고용을 유지해 왔습니다.

교세라는 이를 위해 불황이 오래 이어지더라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늘 대비를 해왔습니다. 형편이 좋을 때 호강하고 돈을 다 써버리지는 않고 내부 유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주주의 것이니 돈을 벌면 바로 주주에게 배당을 줘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기업은 주주의 것만이 아닙니다. 한번 입사한 사람이 회사를 신뢰하면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업은 주주의 것만은 아니고 종업원이나 거래처, 소비자 등 폭넓은 이해관계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업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주주만 잘해주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데,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은 기업이 번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익을 주주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나누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의 1960년대처럼 극심한 노사 분규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노사 화합이 가능할까요?

"자본주의하의 경영은 개인주의적 사고로 흐르기 쉽습니다. 가능하면 종업원을 싸게 부리면서 돈을 많이 벌어 경영자가 많은 이익을 차지하려는 것이죠. 일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상이 생겨났죠.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업이 경영자만 아니라 종업원의 이익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경영자가 자비의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바탕에 있어야 경영자가 노조의 이해를 받아 노사 관계가 호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노조 사람들도 투쟁할 때 이런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닭이 달걀을 많이 낳아야 하는데, 닭을 때리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노사가 같이 닭을 키우자, 그래서 훌륭한 달걀을 많이 낳게 하자'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늘 이야기하는 공통적인 고민은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중소기업에 인재가 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중소기업 사장 본인 자신이 우수한 인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우수한 인재는 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중소기업 시절에는 역시 중소기업에 맞는 인재밖에 모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수한 인재를 모으지 않으면 회사가 잘 되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중소기업에 맞는 인재라도 사장이 그들과 하나가 되어 같이 공부하면서 그들을 우수한 인재로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발전시킨 경영자들이 모두 우수한 인재들이 있어서 대기업이 되었나 하면 그건 아닙니다."

―사람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스스로 잘 타는 자연성(自燃性), 불에 가까이 대면 타는 가연성(可燃性), 그리고 불에 가까이 대도 타지 않는 불연성(不燃性)이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연성이나 불연성인 직원을 자연성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불연성인 사람은 상대로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정열을 갖고 말하면 동조해 주는 가연성의 사람 이상은 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를 경영해 이런 훌륭한 회사로 만들고 싶고, 종업원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목표와 계획을 열정을 갖고 종업원에게 이야기하면 '아 사장님이 그런 생각이라면 나도…'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사장님이 말해도 그렇게 잘 되지는 않을 거야' 하는, 차갑고 정열이 없는 사람은 포기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타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개척해 나가는 자연성이 가장 좋겠습니다만…. 결국 스스로 하려는 의욕이 나고 강한 의지를 갖게끔, 종업원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업에 자연성(自燃性) 종업원은 얼마나 될까요? 예를 들어 10% 정도라든지….

(모두 웃음) "글쎄요. 10% 정도라도 아주 잘된 경우가 아닐까요."

―훌륭한 직원으로 키우고 싶다면 엄하게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불교에 대선(大善)과 소선(小善)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선(大善), 즉 큰 선(善)은 비정(非情)에 가깝지만, 소선(小善), 즉 작은 선(善)은 대악(大惡)을 낳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오냐 오냐'만 하면 불황기처럼 어려움이 닥칠 때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예를 들어 보겠다"면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너무 귀여워서 고생시키지 않고 '오냐 오냐'만 하면 아이는 잘못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 엄하게 꾸지람을 하지 않으면 인내력도 없고 노력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야말로 작은 선이 큰 악을 만든 것이죠.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즉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엄하게 꾸짖고 반드시 고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정(非情)하고 차갑게 보일 정도지만, 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큰 선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항상 직원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응석을 다 받아주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970년대에 태양광 발전 사업에 일찌감치 진출해 계속 적자를 보다가 최근에야 흑자를 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한 이유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저는 에너지 문제가 장차 인류에게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석유나 석탄 이런 화석연료가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따라서 고갈되지 않고 재생 가능한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세상에 확산됐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몇 개 회사가 이런 에너지를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 고생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앞날에 꼭 필요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도 어려움이 닥치면 포기하기 쉬운데, 그런 확신은 어디서 나옵니까? 30년이란 먼 미래의 일이 보이십니까?

"으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질문인데. (그는 한참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늘의 계시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요. 30년 전 하늘에서 떨어진 계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필사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열립니다. 제게는 종종 그런 계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엉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답변인데,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기술자 출신인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오랫동안 연구 개발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이 우주 어딘가에 '지혜의 창고'와 같은 장소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무언가를 절실히 바라고 미치광이처럼 몰두하다 보면 그 지혜의 창고로부터 섬광처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찾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토상을 제정해 세계적인 연구자들에게 시상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그런 경험을 공통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데 부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 다각화에는 관련 사업에 진출하는 것과, 전혀 다른 사업에 진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교세라의 경우 재결정 보석이나 의료용 세라믹재료, 절삭공구, 태양열 전지는 전자(前者)의 예가 되겠습니다만, KDDI의 경우는 후자(後者)에 해당합니다. 사업 다각화에 대한 철학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서 창의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루에 하나씩만 더 낫게, 더 잘하게 노력하면 1년만 지나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획기적인 신제품을 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손을 대는 것은 어느 정도 힘이 붙기 전에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힘이 축적된다면 다른 분야에 진출해도 무방하겠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는 성(城)부터 쌓아야 합니다."

그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과 결혼한 일로도 유명하다. 부인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물어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토의 한 중소기업에 입사해 연구실에서 화인세라믹스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집사람은 저보다 2년 늦게 입사해 연구실 일을 도와주고 있었죠. 그때 저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연구에 몰두하면서부터는 연구실에서 밥을 지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바쁠 때는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죠. 그랬더니 집사람이 가엾다고 봤는지 도시락을 갖다 줬어요. 기쁘게 먹었죠."

―그렇다면 사랑을 먼저 표현한 것은 사모님이셨군요?

"그건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불쌍해서 도시락을 갖다 준 것이었겠죠. (웃음) 지금도 그렇지만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日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사재(私財) 출연해 일본의 노벨상 '교토상' 만들어

지난 2007년 일본스미토모(住友)생명보험은 전국의 기업체 사장 2만6000여명에게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가 누구인가 물었다. 고인(故人)이 된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혼다 소이치로가 각각 1,2위에 올랐고, 3위가 바로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었다. 현존 인물 중에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청춘 시절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입시에서부터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결핵에 걸렸다 간신히 나았다. 대학 시험은 1지망에 불합격했고, 고향의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 시험에 번번이 낙방했다. 은사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에 입사는 했는데, 그 회사는 내일 당장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다 쓰러져 가는 회사였다.

그는 인생 역전(逆轉)의 비결을 "마음을 바꿔먹은 데서 출발했다"고 했다.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180도 마음을 바꾸어 일에 정성을 들이고 필사적으로 연구해 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그 후부터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실험에 열중했습니다. 그때 누적시킨 기술과 실적은 훗날 교세라를 일으키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는 27세 때인 1959년 300만엔을 빌려 목조 창고에서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세운다. 교세라는 세라믹을 소재로 한 전자부품의 제조·판매를 전문으로 하는데, 세계 대형 전자메이커 중에서 교세라와 거래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이다. 휴대전화와 태양광 발전시스템도 만들며 주부들에게는 세라믹 칼로 유명하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공대 출신이지만, 경영 관리로도 명성을 쌓았다. '아메바 경영'으로 대표되는 분산형 조직과 투명하고 과학적인 회계 시스템이 그것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은 "재고 관리나 현금흐름은 교세라처럼 훌륭한 회사가 드물다"고 말하곤 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1984년 미지의 분야인 통신시장에 진출, DDI(현 KDDI의 전신)를 창업해 공룡기업 NTT에 맞서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벌이고 나섰고, 결국 성공한다.

그는 사재(私財) 200억엔을 출연, 일본의 노벨상으로 비유되는 '교토상'을 만들어 시상하고 있다. 그는 "회사는 세습해서는 안 된다"면서 65세이던 1997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엔 교세라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6억엔을 몽땅 대학에 기부했다.

1983년 그의 경영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세이와주쿠(盛和塾)가 설립됐는데, 회원이 5000명에 이른다. 요즘 그는 교세라에 매일 출근해 자문을 해주며, KDDI에도 최고 고문으로 주 2회 자문을 해준다. 이 밖에 사외이사와 고문을 맡고 있는 회사가 하나씩 더 있다고 그는 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1/2009082101363.html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 Summer MBA / (7)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

아무리 우량업체라도 시너지 없으면 M&A 말라
규모의 경제ㆍ기술공유ㆍ사업위험분산 여부 점검
CEO의 잠재역량 발굴ㆍ조직통합 능력도 중요
◆ Summer MBA / (7)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

H건설 경영진은 최근 5조원에 K조선을 인수하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K조선이 우량업체여서 탐나기는 하지만 건설사가 경험 없이 조선업에 진출하는 게 큰 모험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지분 일부만 매입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으나 K조선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면 인수를 택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H건설은 어떤 판단 근거를 갖고 인수ㆍ합병(M&A) 여부를 결정해야 기업 인수 후 위기에 빠지는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경영학에서는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 역량을 효과적으로 묶는 `전사적 전략(corporate strategy)`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즉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사업다각화를 통한 위험 분산`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피인수 기업에 잠재된 역량을 발굴하고 이질적인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도 M&A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 M&A 판단 `시너지 효과`에 맡겨라

= H건설이 K조선을 인수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우선 봐야 할 것이 시너지 효과다. M&A를 통해 한 회사로 거듭난 후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가 다른 비용이나 위험보다 더 큰지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른바 `비용(인수에 따른 위험 등)-편익(시너지 효과)` 분석인 셈이다.

시너지는 다양한 형태로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게 `규모의 경제`다. H건설은 K조선 인수로 기업 규모, 자원 동원력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규모의 이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커진 덩치 때문에 손실이 생기는 `규모의 손실`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규모가 커진 회사는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할 수 있고 경기 상황에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기술ㆍ자원 공유를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 `범위의 경제`를 통한 시너지 효과도 가능하다. K조선이 보유한 해양구조물 기술은 H건설 해상 플랜트나 조력 발전에 활용될 수 있고 H건설 국외 영업력은 선박 수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회사 장점들이 특화를 하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로 남으면 시너지 효과는커녕 서로 짐이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사업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가 어느 정도 커다란지도 시너지 효과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건설사업이 갑자기 어려울 때 조선사업 쪽에 신세를 질 수도 있고, 특수 중장비를 조선소에서 직접 만들어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위험 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M&A 매력은 떨어진다. 또 M&A를 통해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는 것은 `문어발식 경영`으로 매도돼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도 될 수 있다.

건설과 조선을 같이 하면서 얻는 시너지는 수익 확대와 원가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축소는 원가에 반영된다. 또 사업부 간 중복투자 절감, 유휴자산 매각은 자본투자 항목에 해당한다. H건설이 K조선을 인수하기 전 독자적 기업가치가 4조원이라고 가정할 때 K조선을 인수한 후 창출된 가치가 5조원 이상 된다면 H건설에 제안된 인수 가격은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창조적 리더십에 시너지가 좌우된다

= 전사적 전략 연구자들은 M&A를 통해 사업 확장을 할 때 `핵심역량`을 강조한다. 잘 모르는 사업에 가능성만 믿고 덤벼들지 말라는 얘기다. 그만큼 시너지를 위한 철저한 사전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기업 비전과 목표, 운영 체제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심역량은 산업 고유의 생산기술을 넘어서 시장 개척 능력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정의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는지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재무구조와 금리 조건은 기업가치에 직접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시너지를 만드는 것은 이 같은 표면적인 가치 이외 부문도 크게 작용한다. 바로 경영자 역량이다. 경영자는 남들이 모르는 K조선의 해상구조물 기술과 터빈 기술에 대한 가치를 찾아내는 안목과 이질적 기술진을 이끄는 안목이 필요하다. K조선에서 필요한 기술과 시설을 빼고 나머지는 다시 매각하거나 일부 지분을 남겨서 우호적 관계를 지속할 수도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 문제가 생길지, 협력 관계가 돈독해질지 역시 경영자 능력에 달려 있다.

M&A 방식 역시 경영자의 선택과 능력의 함수다. K조선을 인수했다고 무작정 H건설에 합병할 필요도 없다. 한 회사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시너지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무리한 통합으로 둘 다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별개 회사로 두고 사업 협력을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K조선을 세계 유수 B제철과 합작으로 인수하면 어떨까? 이는 선박 건조에 필요한 철강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소재기술을 공유하기 때문에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합작한 철강회사는 K조선이 투자를 늘릴수록 이득이니 H건설과 이해가 엇갈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창조적 경영인의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은 그동안 우리 경제가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였다. 물론 시대가 변해 주주와 이해 관계자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CEO 독단으로 계열사 간 협력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먼저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한` 신뢰가 전사적 시너지 창출에 큰 힘이 됨은 부인할 수 없다.

■ 사업간 연관성 따라 전략모델 다르게

관련성 높을땐 핵심역량 공유…관련성 낮을땐 과감하게 정리

박찬희 교수가 중앙대학교 경영관에서 전사적 전략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 전사적 전략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업 간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해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에 따라 취해야 할 전략 모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업부 간 관련성이 높다면 핵심 역량을 이전하거나 핵심 활동을 공유해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 특정 사업부가 보유한 기술과 지식을 이전하거나 공유하면서 다른 사업부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이다. 또 특정한 활동을 중심으로 각 사업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시너지를 창출할 수도 있다. 서로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합자를 한다거나 기술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실례로 신개념 디스플레이 AMOLED(유기능동발광다이오드)를 개발한 삼성SDI는 이 기술을 삼성전자와 공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AMOLED를 장착한 휴대전화를 선보이면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SDI 측에서 보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성과를 올릴 수 있겠지만 삼성전자의 다른 장점과 결합했을 때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반대로 사업부 간 관련성이 없다면 과감한 정리나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은 최고경영자(CEO) 결단력이 크게 좌우한다. 부실 사업 부문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합리화를 꾀해야 한다. 유휴자산이나 시설 활용도 전사적인 관점에서 활용을 모색해야 한다.

인력 구조조정에는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해고는 퇴직금과 위로금은 물론 대체투자까지 필요한 고비용 처방이다. 남아 있는 직원들 사기 저하도 큰 문제다.

사업 간 포트폴리오 관리는 전사적 전략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과거 BCG(보스턴컨설팅그룹)가 개발한 매트릭스는 사업부 역할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기업 전체 자금이 활용되는 구조다.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모든 기업은 성장률과 시장점유율에서 차이가 있는 다양한 사업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고성장 사업은 성장을 위한 현금 투자를 필요로 한다.

반면 저성장 사업은 잉여 현금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에는 이러한 두 종류 사업 모두가 필요하다. 특히 기업에는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이 중요하다. 캐시카우는 수익 창출원, 즉 확실히 돈벌이가 되는 상품이나 사업을 의미한다. 시장성장률은 낮으나 현재 시장점유율이 높아 계속적으로 현금을 발생시키는 사업 부문이다.

GE 에너지 사업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체계 부문은 불황에도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이는 금융 부문과 온라인 사업 부문에서 입은 손실을 충당해 준다.

■ 전사적 전략(Corporate Strategy)

여러 개 사업부로 구성된 다각화된 기업을 대상으로 `가치 창출`이라는 경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용하는 경영전략이다. 본사 차원에서 형성돼 최고경영자에 의해 결정된다. 전사적 전략은 여러 사업 부문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한 사업 부문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핵심 고려 사항이다.

■ He is…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장)을 거쳐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전략경영을 기업과 정부 현실에 적용하고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가르치는 데 노력하고 있다. 박사과정 재학 중 작성한 `Globali-zation of Daewoo:Case of Uz-Daewoo Auto`는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딜로이트 컨설팅 자문역과 우리홈쇼핑, SKC&C 등 사외이사로 활동했으며 중앙인사위원회, 국가비전2030 작업반, 녹색성장위원회 등에서도 전략경영 기법을 실천해 왔다. 한국경영학회를 통해 우리 기업 현장 사례를 발굴해 교육 현장에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리 = 박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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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17:13:02 입력, 최종수정 2009.08.12 19:43:17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휴대폰 요금 인하는 국가적 의제”

“휴대폰 요금 인하는 국가적 의제”

휴대폰 요금 논란이 무더위만큼이나 뜨겁다.

우리나라 인구의 96%인 4600만 명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고 각 가정은 지출의
5%를 통신비로 그 중 70%를 휴대폰 요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휴대전화 요금과 관련된 국민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93.3%가 휴대전화 요금이 비싸다고 답했다. 적정하다는 응답은 4.2%, 싸다는 응답은 0.6%....

민심이 괜히 민심이겠는가?

OECD 조사 결과와 각 종 통계자료를 분석해보면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은 비싼 것이 맞고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물론 이동통신사는 분석 방식과 적정성 등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동의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통신 요금이 내려간 것보다 외국의 요금이 더 내려갔기 때문이다. 외국은 1인당 평균 통화시간(MOU)이 늘어남에 따라 음성 통화요금(RPM)도 같은 폭으로 내리고 있는데 우리는 평균 통화 시간은 늘어나도 통화 요금은 내리지 않고 있는 것.

많이 쓰면 그만큼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 상도인데 동네 구멍가게도 아는 그 상도
를 우리의 이동통신사는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와 살림, 조금이라도 더 뛰고 일자리라도 조금 더 알아보려면 휴대폰사용이 늘어나기 마련인데 휴대폰 요금 무서워 전화도 마음대로 못하는 답답한 서민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반면 SK텔레콤은 지난해 매출액 14조307억 원에 영업이익 1조7천524억원을 달성했다. 남긴 이익의 상당액이 주주 배당과 직원 성과급 등으로 나눠진 것으로 알려졌다.
3위 사업자인 LG텔레콤도 작년 매출 4조7천980억 원에 영업이익 3천790억 원을 실현했다.

그리고 대리점 보조금에 리베이트 비용 그리고 가입자 유치 위한 출혈 경쟁…일부에서 들리는 경품에 마이너스 유치까지. 이 같은 과다 경쟁에 투자된 비용만 지난 2분기 동안 무려 2조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통신사들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이처럼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또 마케팅에 자금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이유는 여전히 비싼 이동통신 요금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이동통신사들이 ‘10초 단위 요금제’로 연 수 천 억 원씩의 '낙전수입'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10초 단위 요금제에서는 11초를 통화해도 20초 요금을 받는다).

상황이 이러한데 온 국민의 93% 이상이 비싸다고 하는 휴대폰 요금을, 통계 산정방법과 부분적인 수치의 적정성을 문제 삼아 계속 그렇지 않다며 ‘물타기’ 식의 반박을 하는 것은 유치한 ‘말싸움’ 밖에는 안되 보인다. 정히 그렇다면 이동통신사, 방통위 그리고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T/F를 만들어 우리 휴대폰 요금의 실상을 파악해보면 어떨까? T/F 활동 수 일 내 결론이 나올 일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성숙되지 못한 기업은 맹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시비하기 보다는 국가가 정한 시장의 ‘룰’과 ‘심판자’로서의 정부 당국의 역할을 더욱 엄정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온 국민의 관심사이고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도 한 휴대폰 요금 인하 관련 방통위와 공정위의 활동을 살펴보면 답답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일 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하나의 정책 유효성을 따지기 전에 휴대폰 요금 관련 서민의 억울함과 아픔을 과연 알고 있는지, 공복으로서의 ‘진정성’은 있는 것인지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이동통신 요금을 놓고 사실상의 독점과 담합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3개 대기업이 국민의 96%인 4600만여 명에게 고지서를 발부하고 요금을 걷어간다면 이는 '준 조세'와 다를 바 없으며 기업 수준의 ‘사적인 영역’이 아닌 국가가 관여해야 할 ‘공적인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 3개 기업이 전부인 시장 아니 사실상 1개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의 자율과 경쟁에 맡길 일이 아니다.

따라서 방통위와 공정위는 산업육성이 우선이냐 제제가 우선이냐 하는 해묵은 공방보다는 시장의 공정성이 확보돼야 산업도 성장한다는 전제하에 휴대폰 요금 문제를 다루고 또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동통신사도 지금까지의 안정적이고 독점적인 구도를 누려온 결과가 무엇인가 스스로 되물을 때가 된 듯 하다. 무선인터넷 산업은 그 폐쇄성으로 생태계 자체가 소멸되기 직전이고 또 수출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국내에서 수십 조의 매출을 올리고 수 조의 마케팅 비용을 쓰는 3개 이동통신사의 수출실적은 얼마인가?

비싼 휴대폰 요금으로 막대한 이윤을 담보하며 ‘이지 고잉(easy going)’하는 경영 방식은 이동통신사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세계최초로 통화연결음 서비스를 시작하고서도 특허권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여 지금은 세계 공용 서비스가 되다시피한 통화연결음 서비스에 아무런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는가?

이동통신사에는 우수한 인력들이 많다. 휴대폰 요금 내리지 않을 핑계를 찾는 데에 이 우수한 인력을 쓸 것이 아니라 제2의 통화연결음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달러를 벌어들여, 내릴 만큼의 휴대폰 요금은 당당히 내리는 것이 우리의 이동통신사다운 멋진 모습이 아니겠는가?

국내 이동통신 산업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국민과 서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그를 정당화하는 요설을 늘어놓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도덕과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1인당 평균 통화시간(MOU)이 증가한 만큼의 음성 통화요금(RPM)은 내리자. 그것이 정부가 그리고 이동통신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류지영 편집국장 기자 jyyu@kmobi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