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수요일

◆Summer MBA / ⑩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GE가 130년 넘도록 장수하는 비결?
CEO 바뀌어도 끄떡없는 메커니즘 덕
지속성장 위해선 기업내 `창조적 메커니즘` 필수
리더능력ㆍ산업환경ㆍ핵심역량만으론 오래 못 가
로레알 `대결의 방`서 격의없이 전략토론
포스코 `고전읽기`로 인문학적 소양 길러
◆Summer MBA / ⑩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GE를 꼽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글로벌 불황 여파로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130여 년의 장구한 역사 속에 최고 위치를 지키고 있는 GE의 성공 비결을 알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기의 경영자로 평가받았던 잭 웰치 전 회장의 리더십은 GE를 성장시킨 상징적인 요소다.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을 기반으로 적기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다.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자금을 활용했고, 창의력 있는 인적 자원이 모여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GE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포스코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세계 대형 철강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의 힘은 한국형 리더십의 전형을 창출한 박태준 명예회장에게서 찾기도 하고 선진국에서 투자를 기피할 때 선행투자에 나선 데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포스코의 지속 성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 영속 기업의 조건

=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단기적으로 평균 이상의 초과이윤을 올릴 수는 있어도 이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규 경쟁자가 끝없이 진입하고 기존 기업이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초과이윤이 평균 수준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GE, P&G, 필립모리스, IBM은 물론 삼성, LG 등은 독점기업이 아님에도 장기간 최고의 위치를 유지해 왔다. 경영학에서는 이러한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전략`이라는 용어로 메웠다. 지금까지 경영학은 특정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해 왔다.

첫 번째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주체`인 최고경영자의 역량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잭 웰치, 빌 게이츠, 이병철, 박태준과 같은 존재가 기업을 성장시켰다는 이론으로, `경영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분석법이다.

두 번째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다. 오일쇼크가 전환점이었다. 경영자가 기업의 존속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업에 속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기업들이 외부 기회와 위협을 내부 강점, 약점과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대한 이른바 `SWOT` 분석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산업조직을 연구한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이 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경영학자였다.

그러나 신시장을 개척해도 모방하며 따라오는 후발주자를 막을 수 없는 법. 이에 따라 기업들은 `환경`보다 `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경영학자들은 경쟁자가 흉내낼 수 없고 외부에서 얻을 수도 없는 자원을 `핵심역량`이란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핵심역량도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핵심역량의 하나인 `지식`은 한때 모든 경쟁력의 근간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은 특정 기업 소유가 아니다. 지식은 1위에 오를 수 있게 할 수는 있지만 1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메커니즘 경영`은 여기서 출발한다. 기업의 경쟁우위와 장기적 성공을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요인을 간과할 뿐만 아니라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따라서 오랜 시간을 거쳐 기업 내에 구축된 운영원리를 분석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 창조적 메커니즘 구축이 성공 비결

= 메커니즘은 기업 내에서 주체가 환경을 선택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논리이자 이들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원리다. 주체, 환경, 자원을 통합하는 관점인 셈이다. 기업은 좋은 메커니즘을 창출하고 환경변화에 따라 발전시켜 나갈 때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잭 웰치 전 회장이 GE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제프리 이멀트가 새롭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지만 GE 위상은 큰 변화가 없다. 물론 GE 역시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타격을 받았다. 지난 30여 년간 큰 수익을 안겨줬던 GE캐피털이 대규모 손실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멀트 회장이나 경제적 위기라는 환경적 요소 또는 금융업이라는 포트폴리오에만 집중한다면 GE의 재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GE에는 실패를 문책하지 않고 귀중한 교육의 기회로 삼는다는 기업원리가 있다. CEO의 경영 방향 전환을 전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학습 메커니즘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마찬가지다. 제철보국의 사명감, 상의하달식 의사결정, 우향우 정신이 포스코에 내재된 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 신기술 개발, 문리 통섭형 인재 양성 등 글로벌 1위를 향한 열망도 크다.

메커니즘은 인과관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이 있다. 무엇이 기업 고유의 메커니즘인지 외부에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따라서 경쟁자가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삼성과 LG에는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른 메커니즘이 확고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21세기 CEO의 가장 큰 과제는 창조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메커니즘은 주체가 환경변화에 대응해 자원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학습되고 진화한다.

성공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했는지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위대한 CEO가 물러난 한참 뒤에도 `지속성장`이 가능한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 경영의 미래는 통섭에 달렸다

= 기업들이 고유의 창조적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선 고된 과정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특히 경영학이라는 학문 틀에만 갇혀 있으면 대동소이한 방법론만 제시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의 통섭이 있어야 혁신적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학은 인간 신체의 원리를 통해 기업구조 혁신에 대한 영감을 준다. 인간과 기업은 둘 다 장수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몸의 노화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세포 자체의 쇠퇴로 인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젊음의 관건은 조직 구조와 상호 교류다. 젊은 사람은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가 적절하게 배열되고 서로 교류를 하면서 운동이 활성화된 사람이다. 반면 늙은 사람은 늙은 세포가 집중되고 세포 간 운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젊은 조직은 경험이 많은 사람과 젊고 패기 넘치는 사람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조직이다. 이들 사이의 소통은 많으면 많을수록 기업은 성공한다.

로레알은 10년 전부터 본사에 `대결의 방`을 두고 있다. 하급 관리자도 이 방으로 초대돼 그들의 전략을 집행위원회와 논의한다. 여기에서는 불필요한 형식들이 제거되고 전략적인 대화만을 나누게 된다.

예술도 경영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 경영학 수업에서 한 반은 강의에 앞서 예술 공연을 보여주고 시작했고, 다른 반은 곧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곧바로 수업이 진행된 반에서는 기존의 방법론만 논의된 반면 예술 공연을 보고 토론을 진행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P&G의 `장소 메커니즘`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특정 프로젝트를 맡을 경우 먼저 업무에서 떠나 온갖 장난감과 놀이시설이 가득한 곳으로 떠난다. 서류 더미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증대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일주일만 생활하면 반드시 문제 해결책이 마련된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문리 통섭형` 인재를 강조하고 임원들을 대상으로 고전 읽기를 시작한 것은 생소한 시도였지만 최근 기업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경영의 미래는 이제 통섭과 컨버전스에 있다.

■ He is…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61)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해 기획부 실장, 국제지역원장, 경영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인시아드, 하버드대, 도쿄대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초청교수로 활동했고 경영전략, 국제경영, 경영혁신, 디자인경영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를 수행한 국내 경영학계 대표 학자로 꼽힌다. 2006년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이학, 공학, 의학 등 566개 학회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한다. 저서로는 `한국재벌연구` `이제는 전략경영시대` `기업의 환경창조메커니즘` `디자인혁명, 디자인이론` `제4의 전략패러다임-M경영` 등이 있다.

[정리 = 박종욱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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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17:00: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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