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수요일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10] 뭉크의 '절규'

입력 : 2009.07.08 05:36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에 관객이 몰리는 것을 보면 미술도 많이 대중화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시뿐 아니라 인쇄매체나 인터넷에서 쉽게 미술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몇몇 유명 작품들은 대중문화에 편입되어 변형되거나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이런 작품 중에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가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해변가다. 노을이 지는 저녁에 다리 위를 걸어가던 한 인물이 갑자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른다. 실제로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메아리처럼 배경의 풍경 속으로 퍼져가면서 화면 전체를 울리듯 시각화되었다. 뭉크는 어느 날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걷다가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고, 자연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절규를 느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뭉크의 '절규'.
세기말 인간의 신경쇠약적인 불안과 고독을 표현하는 이 그림의 해골과 같은 얼굴은 강한 충격을 준다. 그는 인상주의 그림들처럼 독서를 하는 여성을 그리기보다는 느끼고 고통받고 숨을 쉬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인간의 내면세계를 노출시킨 뭉크의 그림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뭉크의 전시회가 열린 곳곳에서 그의 작품들이 철거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한때 과격하게 여겨졌던 이 작품은 20세기 후반에 오면서 친밀한 대중적 '아이콘'이 되었다. 사람들은 절규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1994년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서 이 작품이 도난당했을 때 낙태반대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훔쳤다고 하면서 '절규'는 죽어가는 태아의 소리 없는 비명이라고 주장했다.

'절규'의 이미지는 가면으로도 만들어져 핼러윈 파티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하고, 학자금이 없어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의 이미지로도 쓰였다. 가장 유머러스한 것은 40세로 중년을 맞이한 사람에게 보내는 생일카드에 사용된 경우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작품이라는 원작의 신비는 사라지고, '절규'는 오늘날 일상의 이미지가 되었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9] 르 코르뷔지에의 성당

입력 : 2009.06.30 22:37 / 수정 : 2009.07.06 10:55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들이 그리스에서 재차 반환요구를 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조각상들은 19세기에 영국의 외교관 엘긴이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가져간 것인데, 그런 연유로 일명 '엘긴 마블'이라고 불린다. 그리스 미술 전성기에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기원전 447~438년)은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수호신 아테네 여신에게 바친 신전이다.

파르테논은 '군신(軍臣) 아테네 여신의 방'이라는 뜻이다. 국가의 힘과 이상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했던 이 신전은 아크로폴리스(높은 도시라는 의미)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은 하얀 대리석의 장엄한 건축이다. 명확한 구조와 완벽한 균형 및 비례를 보이는 이 신전은 아테네인이 믿었던 조화로운 우주적 질서를 반영한다.

‘노트르담 뒤 오’성당.
파르테논 신전은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스위스 태생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이다. 그는 젊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파르테논은 드라마'라고 노트에 썼다. 르 코르뷔지에가 1955년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롱샹에 지은 '노트르담 뒤 오' 성당은 파르테논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초록색 잔디의 높은 언덕 위에 서있는 이 성당은 파란 하늘을 등지고 하얀 실루엣을 드러내며 파르테논을 연상시킨다.

롱샹의 이 성당은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종교적 건물과도 다르다. 약 300명 정도의 신도들이 앉을 수 있는 이 작은 성당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조각과 같다. 벽과 지붕은 모두 기울어진 선이나 곡선으로 되어 있다. 외부의 모습은 마치 성곽이나 보트를 연상시키고, 천장이 곡선으로 내려앉은 내부는 동굴에서 예배를 보는 듯한 은밀한 느낌을 준다.

천장과 벽 사이에는 약 10㎝ 정도 간격이 있어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신비스럽게 실내를 밝힌다. 무엇보다 각각 크기가 다른 창문의 현대적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은 극적인 감명을 불러일으킨다. 시각적이고, 감정적이면서 명상적인 롱샹의 성당은 현대 종교건축의 또 다른 드라마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8] 베르메르의 위작

입력 : 2009.06.23 23:17 / 수정 : 2009.06.26 10:12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영화가 있다.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활약한 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을 주제로 한 픽션이다. 19세기 중엽에야 진지한 연구가 시작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생애는 영화와는 달리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동안 베르메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화가이면서 화상(畵商)이어서 작품을 많이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르메르는 창문이 있고 지도나 그림이 걸려 있는 방에서 여성의 일과나 남녀가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들을 즐겨 그렸다. 차갑고 섬세한 빛의 흐름은 물체의 구조와 색채의 변화를 미묘하게 포착한다. 친밀한 공간 속의 인물들은 세속의 일상에서 벗어나 꿈과 같이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준다. 대부분 소품이지만 완벽한 질서와 시각적 화음은 그를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로 인정받게 하였다.

베르메르의 ‘물 주전자를 쥐 고 있는 여인’
현재 알려진 베르메르의 작품은 36점이다. 미술사학자들은 그의 작품이 더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희망을 이용한 사람이 바로 한 반 미게렌이었다. 사실 묘사에 탁월했던 이 화가는 20세기 초 추상미술이 대세가 되자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베르메르의 물감과 터치를 연구했다. 그런 다음 17세기 무명화가의 그림을 사서 물감을 벗겨내고 그 위에 베르메르처럼 그리고 사인을 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들이 모두 속아 넘어가 이 위작들은 대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미술관에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백을 하고 말았는데, 위조작품 한 점이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괴링의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국보급 작품을 적에게 팔았다는 반역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위작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미술 작품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른 오늘날에는 전문적인 위조자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유명한 미술사학자이자 뛰어난 감식가였던 막스 프리드먼은 90세가 넘어 눈이 어두워졌어도 작품 앞에 서면 직감으로 진품인지 아닌지 알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학자들의 전설은 끝나고 만 것일까?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7] 한국전 참전 기념물

입력 : 2009.06.16 23:02 / 수정 : 2009.06.18 11:15

6·25를 기념하는 기념물은 우리나라는 물론이지만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나라에서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 있는 '한국전참전용사기념물'이다. 1995년에 완성된 이 기념물은 순찰 나온 미군 19명이 서로 주의를 환기시키며 한발 한발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모두 비옷을 입힌 이유는 많은 군인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북한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혹한과 비바람이었다고 회고했기 때문이다. 조각상들 앞에는 원형의 '기억의 연못'이 있고 거기에는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또 옆에는 길이 50m의 검은 화강암 벽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2400명의 육·해·공군, 군목, 간호사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물'.
이 기념물 건립은 1982년 내셔널 몰에 세워진 '월남전참전용사기념물'에 자극을 받아 추진되었다. 월남전기념물은 70m에 달하는 두개의 검은 화강석이 125도 각도로 V자 형태로 마주치는 단순한 추상 형태였다. 검은 화강석에는 사망한 군인 5만800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승리보다는 죽은 병사를 기억하게 하는 이 기념비의 참신함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찬사를 보냈지만, 검은색은 슬픔과 수치를 상징하므로 참전 군인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비난도 거셌다.

월남전기념물에 대한 논쟁은 한국전기념물에도 영향을 줬다. 한국전기념물 건립위원회는 참전 군인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고 생생한 전투장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를 원했다. 아주 뛰어난 사실성을 보여주는 기술적인 훌륭함은 실제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의 긴장과 피곤을 매우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이 기념물이 전쟁을 더 이상 승리와 패배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중요하다. 기념물이 영웅적인 전투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개념에서도 벗어났다. 그보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헌신한 평범한 군인들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념물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조형물이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6] 미술가의 교육

입력 : 2009.06.09 23:07 / 수정 : 2009.06.18 11:21

 

나의 이메일 이름은 첸니니다. 이메일을 계정할 때 마침 중세 이탈리아의 화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1370?~1440?)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였다.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첸니니가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이유는〈일 리브로 델라르테(미술의 책)〉를 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익힌 기술을 다른 미술가에게 전수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3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 그는 모든 미술의 기본은 드로잉이며, 도제 첫 일 년 동안 매일 종이나 패널에 펜·초크·목탄·붓으로 연습하라고 충고했다.

르네상스에 들어오면 화가의 훈련은 기술단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지식, 과학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드로잉에 대한 강조는 여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관찰력과 상상력을 키우려면 항상 스케치 북을 가지고 다니라고 권장했다. 1563년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가 세워져 처음으로 미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이후 유럽 미술 아카데미의 기본과정은 인체와 석고 드로잉으로 이루어졌다. 이토록 드로잉을 강조한 이유는 서양회화가 주로 역사·종교·신화를 주제로 하는, 기본적으로 인물을 그리는 미술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는 사람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표현, 동작, 운동감에서 감정을 읽고 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15세기 초 첸니니의 제단화.
19세기 중반부터 이에 대한 반발이 시작되었다. 미술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는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미술가들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양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모더니즘 미술가들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미술이 중요시한 창의력과 자기표현 중심의 실기 교육이 지나치게 엘리트적인 미술가를 양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폴 게티 재단에서 미술가 지망생들에게 성(性)·인종 등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문 교양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우리나라 모 대학의 미대 입학시험에 실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훌륭한 미술가를 키우기 위한 바람직한 교육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5] 홀바인의 초상화

입력 : 2009.06.03 03:27 / 수정 : 2009.06.05 09:19

 

초상화가 실제 인물과 똑같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부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적어도 인상주의 이전까지는 화가들이 인물을 이상화해 그리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활약했던 독일의 한스 홀바인(1497~1543)은 자신이 파악한 인물의 단점을 훌륭하게 보완해 그려 의뢰인을 만족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초상화가였다.

바젤에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초상을 그린 후 그의 소개로 영국으로 간 홀바인은 헨리 8세의 대법관이던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런 인연으로 영국에 머물게 된 그는 곧 헨리 8세(재위 1509~ 1547)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헨리 8세는 6번이나 결혼을 했다.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두번째 왕비인 앤 볼린을 처형했던 헨리 8세는 세번째 왕비 제인 시무어가 죽자 또다시 새로운 신붓감을 찾고 있었다. 교황 세력에 맞서고자 한 그는 외국 신부를 맞이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홀바인을 브뤼셀에 보내 남편을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은 덴마크 공주 크리스티나를 그려 오게 하였다.

덴마크의 크리스티나(왼쪽)와 클리브즈의 앤.
이 초상화에서 크리스티나는 수줍은 듯이 약간 돌아선 채 보는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보석이나 장식이 전혀 없는 검은색 상복은 오히려 지적이면서 단아한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매혹적인 눈은 이 여성에 대해 더 알고 싶게 한다. 정략결혼이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했던 헨리 8세는 이 초상화에 끌려 크리스티나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헨리 8세의 경력을 알고 있던 이 똑똑한 미망인은 그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헨리 8세는 다시 홀바인을 네덜란드에 보내 또 다른 신붓감인 클리브즈 공작의 딸 앤을 그려오라고 했다. 앤은 외모가 평범했다. 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홀바인은 화려한 의상과 아름다운 보석들로 치장한 모습으로 그렸다. 헨리 8세는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어 결혼하기로 했다. 그러나 앤이 영국에 도착한 날 실제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한 그는 곧 이혼했다. 뛰어난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얼마나 인물을 미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4] 법정에 선 미술품

입력 : 2009.05.26 23:16 / 수정 : 2009.06.01 09:13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뉴욕 맨해튼의 연방플라자 앞에 세워졌다가 철거된 리처드 세라(1939~)의 조각 '기울어진 호(弧)'는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세라는 1979년 미국 정부 총무처로부터 야외조각을 위촉받아 2년 후 약 36m 길이에 3.6m 높이의 거대한 조각을 완성했다. 활 모양으로 휘어져 서 있는 이 작품은 친(親)환경 재료인 코르텐 스틸로 만들었지만 외관상으로는 녹이 슨 것같이 보였다.

작품이 설치된 후 연방건물 직원들 사이에서 이 조각이 시야를 가리고 보기 흉하며, 먼 길을 돌아가게 하기 때문에 작품을 옮겨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미술은 작품 중심보다는 관람자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세라는 자신의 조각은 설치 장소를 고려해 제작한 것이므로 장소를 옮기는 것은 작품을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재판까지 간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작품의 통제권이 전적으로 소유자, 즉 총무처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1989년 이 작품은 철거됐다.

베로네제의 '레비의 집에서 열린 향연'.

세라는 적어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는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反)종교개혁이 한창이던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는 종교화의 적절성이 종교재판에서 일방적인 판결을 받는 일이 많았다. 베네치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제(1528~1588)는 1573년 재판에 회부됐으나 현명하게 대처한 경우다. 남아 있는 재판 기록을 보면, 재판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에 왜 어릿광대, 코피를 흘리는 사람,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 후 이단으로 여겨지는 독일인이 등장하는지 물었다.

베로네제는 자신도 작품을 자기 마음대로 구성하는 시인이나 궁정익살꾼(이들은 화가보다 사회적 위상이 높았다)처럼 자격을 갖췄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려 넣었다고 답변했다. 결국 그는 3개월 안에 자신의 비용으로 그림 내용을 바꾸라는 판결을 받았다. 베로네제는 이에 불복하고 그림을 고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종교화로 보이지 않게 그림 제목을 '레비의 집에서 열린 향연'으로 바꿔 버렸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3] 라파엘의 매력

입력 : 2009.05.19 23:09 / 수정 : 2009.05.22 16:47

'그란두카의 성모', 1505 년경.
미국 유학 시절 르네상스 미술을 가르치던 교수가 라파엘(1483~1520)의 작품은 나이가 들어야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요즈음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이뤘던 라파엘은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당시에는 그들과 동등하게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강렬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창조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신과 같은 인체를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현대에 와서도 대중적 지명도를 누리고 있는 반면, 라파엘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주로 거론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새롭게 창조하기보다는 다른 대가들의 작품에서 자신이 필요한 요소를 수용하고 종합했던 그의 탁월한 능력이 현대인에게는 높이 평가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504년, 미술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 온 젊은 라파엘은 성모자(聖母子)상을 많이 그렸다. 성모자상에서 라파엘이 기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내용은 종교적인 이야기보다는 인간 문화의 근본인 다정한 모성애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바로 르네상스 정신인 인본주의의 반영이기도 했다. 단순하고 평안하면서도 지적이었던 그의 작품은 1508년에 로마로 가면서 장대한 양식으로 변한다.

라파엘이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서재에 '아테네 학당'을 그리는 작업을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6세였다. 그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 그림은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과학자·예술가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리스 문명에 대한 르네상스인의 '오마주'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려진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위엄 있고 설득력 있는 동작으로 각자의 믿음과 학설을 전달하고 있다. 그림 속의 고전적 건축과 인물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완벽한 균형과 조화의 미를 보여준다. 강렬하고 개성적인 작품보다는 지성적이고 균형과 조화를 이룬 미술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이제야 라파엘의 미술이 이해가 되는 듯하다.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2]반 고흐와 고갱

입력 : 2009.05.12 22:39 / 수정 : 2009.05.22 16:49

 

생애가 작품만큼 관심을 갖게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며칠 전 신문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귀를 자른 것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동료화가 폴 고갱(1848~ 1903)이었다는 주장이 실렸다. 남부 프랑스의 아를에서 1888년 10월부터 두달을 함께 지내던 반 고흐와 고갱이 격한 언쟁을 벌였고, 반 고흐가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하자 고갱이 박차고 떠나버렸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면도칼로 잘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반 고흐를 이렇게 격분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에 있던 반 고흐가 화상(畵商)을 하는 동생 테오를 찾아 파리로 온 것은 1886년이었다. 같은 해 그는 이곳에서 5세 연상인 고갱을 만났다. 증권 브로커로 일하다가 35세에 화가가 된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젊은 화가들의 리더 격이었다. 얼마 후 반 고흐는 아를로 떠나면서 고갱을 초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기질 차이도 있었지만 미술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갱은 숙련된 소묘 화가인 앵그르와 드가를 좋아했고, 반 고흐는 고갱이 싫어하는 농민 화가 밀레를 좋아했다. 고갱은 구상을 미리 하고 기억과 상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했지만, 반 고흐는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물리적 세계와의 감정적 교류에서 영감을 받는 화가였다. 이런 차이는 언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귓불을 자르는 반 고흐의 첫 번째 발작을 촉발했던 것이다.


고갱과 같이 지낼 때 반 고흐는 자신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한쌍의 그림으로 그렸다. 반 고흐 자신의 의자에는 그가 늘 애용하던 서민적인 파이프가 놓여 있고, 고갱의 의자에는 지성과 상상력을 상징하는 책과 촛불이 있다. 자신의 의자는 거친 직선을 교차시켜 투박하게 묘사한 반면, 고갱의 의자는 장식적인 곡선과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의자 주인의 존재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이 그림들은 단순한 정물화를 넘어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왼쪽) 와‘빈센트의 의자’.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1] 아크나톤의 부활

입력 : 2009.05.05 23:20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지금 고대 이집트 미술품을 모은 '파라오와 미라'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서 목은 없어지고 몸체만 남은 아주 작은 조각을 보았다. 이 조각은 기원전 14세기 중엽에 재위한 신왕국 18왕조의 파라오 아크나톤의 '샵티'(지하세계에서 파라오 대신 노동을 하는 입상)였다. 이 조각의 앞에는 아크나톤을 의미하는 '카르투슈'가 새겨져 있다. '카르투슈'란 왕이나 왕조를 의미하는 상형문자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 끈 모양의 테두리를 말한다.

아크나톤의 원래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불룩한 배와 가슴, 부푼 눈두덩, 두꺼운 입술과 비죽 튀어나온 턱을 가진 이상 골격의 소유자였다. 여러 설이 있지만 순수한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결혼을 하던 이집트 왕가에서 나타난 일종의 유전병으로 추정된다.

그는 그때까지 평온하게 살아오던 이집트에서 과격한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가장 강력한 태양신 '아몬 레' 대신 유일한 신 '아텐'을 섬기고, 사람과 동물이 뒤섞인 모양으로 표현되던 신의 모습을 태양 원반으로 표시했으며, 아텐을 숭배하는 많은 신전을 세웠다. 자신의 이름을 아텐에게 복종한다는 뜻의 아크나톤으로 바꾼 그는 수도도 테베에서 아마르나라는 새로운 도시로 옮겼다. 새로운 변화는 아마르나 시기의 미술에도 보인다. 엄격하고 부동적인 모습의 인물들은 유연한 곡선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표현되었고 파라오 가족의 단란한 일상생활 같은 모습도 미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단한 파격이었다.

변화는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아크나톤이 죽자 그동안 권력을 잃어버렸던 사제들은 다시 수도를 테베로 옮겼고, 모든 기록과 미술에서 아크나톤의 이름을 지워버리거나 파괴해버려 그의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근대의 고고학자들은 아마르나를 발굴하면서 유물들을 찾아냈다.

그중의 하나가 현재 베를린의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네페르티티 두상이다. 아크나톤의 왕비였던 이 네페르티티 두상은 이집트 특유의 형식미와 아마르나 양식의 섬세한 곡선이 아름답게 혼합되어 있는 최고 걸작품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에서 본 아크나톤의 '샵티' 역시 역사의 파괴에서 용하게 남아 있는 조각상이다.

조선일보

◆Summer MBA / ⑩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GE가 130년 넘도록 장수하는 비결?
CEO 바뀌어도 끄떡없는 메커니즘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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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알 `대결의 방`서 격의없이 전략토론
포스코 `고전읽기`로 인문학적 소양 길러
◆Summer MBA / ⑩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GE를 꼽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글로벌 불황 여파로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130여 년의 장구한 역사 속에 최고 위치를 지키고 있는 GE의 성공 비결을 알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기의 경영자로 평가받았던 잭 웰치 전 회장의 리더십은 GE를 성장시킨 상징적인 요소다.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을 기반으로 적기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다.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자금을 활용했고, 창의력 있는 인적 자원이 모여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GE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포스코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세계 대형 철강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의 힘은 한국형 리더십의 전형을 창출한 박태준 명예회장에게서 찾기도 하고 선진국에서 투자를 기피할 때 선행투자에 나선 데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포스코의 지속 성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 영속 기업의 조건

=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단기적으로 평균 이상의 초과이윤을 올릴 수는 있어도 이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규 경쟁자가 끝없이 진입하고 기존 기업이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초과이윤이 평균 수준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GE, P&G, 필립모리스, IBM은 물론 삼성, LG 등은 독점기업이 아님에도 장기간 최고의 위치를 유지해 왔다. 경영학에서는 이러한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전략`이라는 용어로 메웠다. 지금까지 경영학은 특정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해 왔다.

첫 번째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주체`인 최고경영자의 역량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잭 웰치, 빌 게이츠, 이병철, 박태준과 같은 존재가 기업을 성장시켰다는 이론으로, `경영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분석법이다.

두 번째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다. 오일쇼크가 전환점이었다. 경영자가 기업의 존속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업에 속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기업들이 외부 기회와 위협을 내부 강점, 약점과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대한 이른바 `SWOT` 분석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산업조직을 연구한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이 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경영학자였다.

그러나 신시장을 개척해도 모방하며 따라오는 후발주자를 막을 수 없는 법. 이에 따라 기업들은 `환경`보다 `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경영학자들은 경쟁자가 흉내낼 수 없고 외부에서 얻을 수도 없는 자원을 `핵심역량`이란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핵심역량도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핵심역량의 하나인 `지식`은 한때 모든 경쟁력의 근간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은 특정 기업 소유가 아니다. 지식은 1위에 오를 수 있게 할 수는 있지만 1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메커니즘 경영`은 여기서 출발한다. 기업의 경쟁우위와 장기적 성공을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요인을 간과할 뿐만 아니라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따라서 오랜 시간을 거쳐 기업 내에 구축된 운영원리를 분석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 창조적 메커니즘 구축이 성공 비결

= 메커니즘은 기업 내에서 주체가 환경을 선택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논리이자 이들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원리다. 주체, 환경, 자원을 통합하는 관점인 셈이다. 기업은 좋은 메커니즘을 창출하고 환경변화에 따라 발전시켜 나갈 때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잭 웰치 전 회장이 GE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제프리 이멀트가 새롭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지만 GE 위상은 큰 변화가 없다. 물론 GE 역시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타격을 받았다. 지난 30여 년간 큰 수익을 안겨줬던 GE캐피털이 대규모 손실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멀트 회장이나 경제적 위기라는 환경적 요소 또는 금융업이라는 포트폴리오에만 집중한다면 GE의 재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GE에는 실패를 문책하지 않고 귀중한 교육의 기회로 삼는다는 기업원리가 있다. CEO의 경영 방향 전환을 전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학습 메커니즘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마찬가지다. 제철보국의 사명감, 상의하달식 의사결정, 우향우 정신이 포스코에 내재된 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 신기술 개발, 문리 통섭형 인재 양성 등 글로벌 1위를 향한 열망도 크다.

메커니즘은 인과관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이 있다. 무엇이 기업 고유의 메커니즘인지 외부에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따라서 경쟁자가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삼성과 LG에는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른 메커니즘이 확고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21세기 CEO의 가장 큰 과제는 창조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메커니즘은 주체가 환경변화에 대응해 자원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학습되고 진화한다.

성공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했는지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위대한 CEO가 물러난 한참 뒤에도 `지속성장`이 가능한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

◆ 경영의 미래는 통섭에 달렸다

= 기업들이 고유의 창조적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선 고된 과정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특히 경영학이라는 학문 틀에만 갇혀 있으면 대동소이한 방법론만 제시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의 통섭이 있어야 혁신적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학은 인간 신체의 원리를 통해 기업구조 혁신에 대한 영감을 준다. 인간과 기업은 둘 다 장수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몸의 노화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세포 자체의 쇠퇴로 인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젊음의 관건은 조직 구조와 상호 교류다. 젊은 사람은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가 적절하게 배열되고 서로 교류를 하면서 운동이 활성화된 사람이다. 반면 늙은 사람은 늙은 세포가 집중되고 세포 간 운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젊은 조직은 경험이 많은 사람과 젊고 패기 넘치는 사람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조직이다. 이들 사이의 소통은 많으면 많을수록 기업은 성공한다.

로레알은 10년 전부터 본사에 `대결의 방`을 두고 있다. 하급 관리자도 이 방으로 초대돼 그들의 전략을 집행위원회와 논의한다. 여기에서는 불필요한 형식들이 제거되고 전략적인 대화만을 나누게 된다.

예술도 경영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 경영학 수업에서 한 반은 강의에 앞서 예술 공연을 보여주고 시작했고, 다른 반은 곧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곧바로 수업이 진행된 반에서는 기존의 방법론만 논의된 반면 예술 공연을 보고 토론을 진행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P&G의 `장소 메커니즘`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특정 프로젝트를 맡을 경우 먼저 업무에서 떠나 온갖 장난감과 놀이시설이 가득한 곳으로 떠난다. 서류 더미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증대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일주일만 생활하면 반드시 문제 해결책이 마련된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문리 통섭형` 인재를 강조하고 임원들을 대상으로 고전 읽기를 시작한 것은 생소한 시도였지만 최근 기업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경영의 미래는 이제 통섭과 컨버전스에 있다.

■ He is…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61)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해 기획부 실장, 국제지역원장, 경영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인시아드, 하버드대, 도쿄대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초청교수로 활동했고 경영전략, 국제경영, 경영혁신, 디자인경영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를 수행한 국내 경영학계 대표 학자로 꼽힌다. 2006년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이학, 공학, 의학 등 566개 학회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한다. 저서로는 `한국재벌연구` `이제는 전략경영시대` `기업의 환경창조메커니즘` `디자인혁명, 디자인이론` `제4의 전략패러다임-M경영` 등이 있다.

[정리 = 박종욱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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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17:00:01 입력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IT 업계 아웃소싱은 클라우드컴퓨팅으로
인터넷서 IT자원 빌려 사용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넷을 통해 IT자원을 수요에 따라 빌려 사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IT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IT 아웃소싱` 모델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IT자원과 인터넷이 결합된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제품은 더 이상 소유의 개념이 아닌, 필요한 만큼만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즉, IT자원과 인터넷 서비스의 결합이 이뤄졌고 고객 입장에서 관리비용의 절감 및 IT자원 활용의 극대화라는 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온라인 비즈니스의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을 통한 IT자원의 온디맨드(on-demand) 아웃소싱 서비스`로 볼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사용자들은 애플리케이션, 스토리지, 운용체계(OS), 보안 등 필요한 IT자원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 골라서 사용하게 되며 사용량에 기반해 대가를 지불한다.

사용자는 제공받은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인터넷이 연결된 단말기를 통해 데이터센터인 클라우드센터에 저장하고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원하는 시점에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클라우드(Cloudㆍ구름)라는 이름은 사용자들이 기존에 개인이 직접 관리하던 PC를 통해 수행하던 작업을, 컴퓨팅 인프라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구름 속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네이버 등 포털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웹메일이나 블로그는 물론, 웹하드 서비스나 웹호스팅 서비스도 클라우드 서비스의 한 부분이다.

아마존의 S3(Simple Storage Service)와 EC2(Elastic Compute Cloud)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07년 뉴욕타임스는 홈페이지에서의 기사 검색 서비스를 무료화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851년부터 1922년에 걸친 방대한 양의 기사를 PDF로 변환해야 했는데 발행부수는 무려 1100만건이나 됐고 데이터의 용량 또한 4TB(테라바이트ㆍ1TB는 약 1000GB)나 됐다. 이를 완료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비의 추가 구매 없이 아마존의 데이터센터에 있는 가상 서버와 스토리지 서비스를 적절히 활용해 단 하루 만에 작업을 마쳤다.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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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엔 껌딱지가 없는데… `수평적 아웃소싱`이 비결이죠
보안검색ㆍ터미널운영등 35개 업체에 맡겨
외주업체가 알아서 개선하게 서비스 협약
갑을관계 탈피 상생협력으로 경쟁력 높여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1992년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단기간에 세계 1위 공항으로 성장시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출국 수속에서 실제 출국까지 최단 시간이 걸리며 비행기 연착률, 수하물 처리 시간 등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인천국제공항이 1위에 오른 비결은 공항 서비스에만 그치지 않는다.

연면적 51만4910㎡(15만평)에 달하는 탑승동 바닥에는 버려진 껌이나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다. 500개에 달하는 화장실도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공기 오염도 바닥청소 광도, 먼지까지 지표화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인천국제공항이 세계 1위 공항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결로 공사는 공항 건설과 마케팅 등 핵심 업무만을 담당하고, 시설 운영과 관리 업무는 100% 아웃소싱하고 있는 것이 꼽힌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은 여객터미널 운영 용역, 교통관리, 탑승교, 보안검색 용역, 공항소방대, 야생조수, 여객터미널, 토목시설, 조경시설, 자원회수, 승강 탑승, 수하물 처리, 자료관리 용역 등을 35개 회사 5558명(2008년 12월 현재)에게 아웃소싱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SLA(Service Level Agreementsㆍ서비스 수준 협약)를 체결해 SLM(Service Level Managementㆍ서비스 수준 관리)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 서비스 수요자와 아웃소싱 서비스 기업이 요구사항과 우선순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 갈등이나 분쟁을 줄이고 협약 내용에 따라 철저히 계약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의 아웃소싱이 처음부터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개항 초에는 정부 정책에 의해 추진됐기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천국제공항은 효율적으로 아웃소싱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창조적 아웃소싱`과 SLAㆍSLM 체계 도입을 검토했다. 컨설팅은 8개월 동안 진행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공사와 관련된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아웃소싱 업무를 SLA에 의해 관리해 성공 가도에 이르렀다.

◆ 창조적으로 아웃소싱하라

= 국내 기업에도 `아웃소싱(외주제작)`이 정착되고 있지만 인천공항공사처럼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기업은 많지 않다. 대부분 인력 파견이나 콜센터 아웃소싱에 그치고 있는 수준이다. 반면 GE, 델컴퓨터, 델타에어라인, 아마존닷컴, 도요타자동차 등은 효과적인 아웃소싱으로 기업 경쟁력을 극대화해 여전히 글로벌 톱 기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 아웃소싱은 이론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적용하기엔 익숙지 않은 경영기법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은 모두 수직계열화하고 있으며 아웃소싱 업체에는 상생협력보다는 소위 `갑을 관계`라고 부르는 하도급업체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웃소싱을 대리생산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좋은 사업은 혼자 스스로 해야 한다(Just do it yourself)는 홀로서기 방식과 연구개발(R&D), 마케팅, 영업, 인사, 판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기능을 조직 내 모두 보유해야 한다는 자족주의 방식이 효율적인 아웃소싱을 가로막고 있다.

각 기업이 A에서 Z까지 모두 할 수 없다면 효과적인 `소싱(Sourcing) 전략`을 짜는 것은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 된다는 것에 대부분 기업이 동의하고 있다. 특히 기존 아웃소싱 방법론을 극복한 `창조적 아웃소싱`을 도입하면 비용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절감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생산, 판매, 관리 등 기업 내부에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부분을 내보내 고정적인 인건비나 운영비를 변동시키고 경기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균형성과지표(Balanced Score CardㆍBSC)를 활용한 분석 방법도 창조적 아웃소싱의 중요한 방법이다. 재무지표와 함께 핵심 역량의 분배와 집중 등 비재무지표를 동시에 평가해 업무 성과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아웃소싱을 통해 핵심 역량을 결집시키고 외부 기업의 능력을 내재화한다면 그 기업은 경쟁력 향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 창조적 아웃소싱 방법론

= 경쟁력 있는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특히 아웃소싱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아웃소싱 업자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해줄 것이란 생각은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창조적 아웃소싱을 위해서는 각 기업이 고유의 방법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자사의 핵심 역량을 분석하고 미래와 현재 역량의 차이를 토대로 타당성을 분석하고 실질적 아웃소싱 도입을 위한 소싱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창조적 아웃소싱은 사전 진단 및 아웃소싱 타당성 분석→아웃소싱 전략 수립→사업자 선정ㆍ이관→아웃소싱 운영ㆍ관리→만기(완료)의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계약서를 기술할 때 예상하지 못한 복잡한 상황을 포함하다 보면 전체적인 숲을 못 보게 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아웃소싱에서는 사업자 선정과 협상에 이르기까지 계약조건을 `가치제안`이라고 한다. 아웃소싱이 업무 대행을 넘어 신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가치제안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아웃소싱 업체들은 도입 시 10% 절감은 기본이고 최대 30% 비용 절감을 제시한다. 그러나 원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하면 비용이 오히려 증가됐다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는 업무 대상과 범위에 대해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숨겨진 비용(히든 코스트)을 찾아야 한다.

■ He is…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47)는 아웃소싱 분야와 서비스 사이언스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쌓았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시피대에서 MBA를 수료하고 뉴욕 버팔로 주립대학에서 정보시스템 경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서강대 경영대 교수로 임용된 후 현재는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과 지식서비스 R&D센터장을 맡고 있다.

IT아웃소싱리더스 포럼 회장,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 ITSMF 코리아 부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외부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 삼성SDS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등에 대한 아웃소싱ㆍ평가 업무를 진행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IT 매니지먼트, 서비스 사이언스, 아웃소싱, 서비스 수준 협약, 정보시스템 성과 측정, IT 운영관리 프로세스 등이다.

[정리 = 손재권 기자]

 

 

IT 업계 아웃소싱은 클라우드컴퓨팅으로

인터넷서 IT자원 빌려 사용
◆Summer MBA / ⑨ 남기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넷을 통해 IT자원을 수요에 따라 빌려 사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IT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IT 아웃소싱` 모델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IT자원과 인터넷이 결합된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제품은 더 이상 소유의 개념이 아닌, 필요한 만큼만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즉, IT자원과 인터넷 서비스의 결합이 이뤄졌고 고객 입장에서 관리비용의 절감 및 IT자원 활용의 극대화라는 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온라인 비즈니스의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을 통한 IT자원의 온디맨드(on-demand) 아웃소싱 서비스`로 볼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사용자들은 애플리케이션, 스토리지, 운용체계(OS), 보안 등 필요한 IT자원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 골라서 사용하게 되며 사용량에 기반해 대가를 지불한다.

사용자는 제공받은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인터넷이 연결된 단말기를 통해 데이터센터인 클라우드센터에 저장하고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원하는 시점에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클라우드(Cloudㆍ구름)라는 이름은 사용자들이 기존에 개인이 직접 관리하던 PC를 통해 수행하던 작업을, 컴퓨팅 인프라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구름 속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네이버 등 포털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웹메일이나 블로그는 물론, 웹하드 서비스나 웹호스팅 서비스도 클라우드 서비스의 한 부분이다.

아마존의 S3(Simple Storage Service)와 EC2(Elastic Compute Cloud)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07년 뉴욕타임스는 홈페이지에서의 기사 검색 서비스를 무료화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851년부터 1922년에 걸친 방대한 양의 기사를 PDF로 변환해야 했는데 발행부수는 무려 1100만건이나 됐고 데이터의 용량 또한 4TB(테라바이트ㆍ1TB는 약 1000GB)나 됐다. 이를 완료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비의 추가 구매 없이 아마존의 데이터센터에 있는 가상 서버와 스토리지 서비스를 적절히 활용해 단 하루 만에 작업을 마쳤다.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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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7 16:51:21 입력, 최종수정 2009.08.27 19:43:24

국내 첫 명품시계 전시회

오데마피게·위블로·브라이틀링…국내 첫 명품시계 전시회
13~15일 매경 세계지식포럼서

`오데마 피게, 위블로, 브라이틀링, 해리 윈스턴, 태그호이어….`

명품시계 마니아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브랜드들이다.

이들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보고 최근 명품시계시장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명품시계 전시회가 다음달 13일부터 15일까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매일경제신문이 다음달 13~15일 사흘간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에서 개최하는 `제10회 세계지식포럼` 부대행사로 열린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명품시계 브랜드들이 단독으로 전시회를 연 적은 있지만 여러 브랜드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본격적인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회는 스위스 바젤과 제네바에서 매년 열리는 고급시계페어처럼 명품시계 트렌드와 신상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는 최고가 시계에서 명품 스포츠시계까지 다양한 브랜드들이 참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선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 세계 3대 하이-엔드(high-end) 워치로 불리는 오데마 피게를 필두로 고급시계에 스포츠 감각을 접목시켜 스포츠럭셔리 시계라는 영역을 개척한 위블로가 참여한다.

또 속도ㆍ환율까지 계산해줘서 파일럿이 가장 사랑한다는 브라이틀링, 보석과 시계의 영역을 모호하게 만든 해리 윈스턴, 그리고 대중들에게 명품시계의 접근성을 가능케 한 매스티지(대중명품) 브랜드 태그호이어도 선을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는 브랜드 중 최고가 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로 불리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로 평균 4억~5억원대의 초고가 시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옥타곤(8각형) 형태에 8개의 나사(스크루)로 몸체를 고성시켜 외부충격을 받아도 절대 분해되지 않는 게 장점인 `로열 오크` 등이 나온다.

`위블로(HUBLOT)`는 1980년 창립자 카를로 크로코가 시계 제조에선 처음으로 고무 소재와 골드를 결합해 만든 시계다. 선박 현창(프랑스어로 `위블로`라고 함)을 모티브로 한 베젤을 비롯해 독창적인 케이스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크라운(용두)이 특징이다.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대명사로 떠오른 위블로는 승마, 요트 그리고 폴로 경기 등을 즐기는 유럽 상류층을 중심으로 알려진 브랜드다. 이번 전시에서는 큰 다이얼로 유명한 `빅뱅` 모델을 선보인다.

`브라이틀링(BREITLING)`은 파일럿을 위한 시계라는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도의 정밀한 기술을 갖춘 크로노그래프(시간을 기록하는 장치) 시계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창업자의 손자인 윌리 브라이틀링이 1952년 내놓은 `내비타이머`가 나온다.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은 화려한 보석들과 디자인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 귀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이 애용하는 보석 시계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출장과 여행이 잦은 여성들을 위한 듀얼 타임 워치인 `애비뉴 스퀘어드`를 비롯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영감을 받은 `애비뉴 컬렉션` 등이 소개된다.

최근 서울 청담동에 세계 최대 단독매장을 연 `태그호이어(TAG Heuer)`는 국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브랜드다. 이번에는 세련된 디자인의 `카레라` 라인을 비롯 수상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아쿠아레이서``포뮬러 1` 등의 제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오데마 피게를 수입하는 권영대 스타일리더 사장은 "세계적 석학들과 저명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지식포럼에서 예술품 영역에 도전하는 마스터피스 시계를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면서 "장인과 희소성의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는 고급 시계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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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6:55:13 입력, 최종수정 2009.09.30 07:46:26

◆명품시계 이야기 ◆ 파르미지아니

파르미지아니, 천재 시계복원가가 만드는 신흥 명품

미쉘 파르미지아니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아르마니와 프라다의 차이점은?

전자는 1세기 훨씬 이전부터 마구상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전통의 명품인 데 비해 후자는 당대 살아있는 톱디자이너들이 만드는 신흥 명품이라는 점이 다르다. 명품 시계에도 전통을 앞세우는 브랜드와 패션과 디자인을 앞세운 신흥 브랜드가 있다.

국내에 유입된 시계 중 최고가인 10억3000만원짜리 제품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파르미지아니는 이른바 신흥 명품이라 할 수 있다. 1976년에 첫선을 보였으니 30년을 막 넘은 브랜드다.

영국의 팝가수 엘턴 존과 같은 유명인들이 차고 나와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프랭크 뮐러처럼 남다른 브랜드를 찾는 시계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프랭크 뮐러가 고급시계 업계에서 알아주는 시계 명인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처럼 파르미지아니는 천재적 시계 복원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만든 시계다. 1950년생인 그는 스위스에서 매년 선정하는 최고의 마스터워치메이커 톱5에 올라 있으며, 현재도 생명없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시계를 복원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파르미지아니는 복원가가 만든 시계답게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 미니트 리피트 등의 복잡한 기계식 장치가 들어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로 유명하다.

국내에 들어온 10억3000만원짜리 제품 파르미지아니의 `토릭 웨스트민스터 로즈골드` 제품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다. 이 제품은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의 종소리를 그대로 구현한 게 특징. 시계 내부 4개의 공이 각각 다른 4가지 소리를 내면서 15분 간격, 1분 간격, 1초 간격으로 소리를 들려준다. 시계 측면에서 공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디자인했다. 또한 투르비용(중력에 의해 생기는 시간의 오차를 줄여주는 기술)을 1분에서 30초로 줄여 정확성을 가미했다. 다른 명품시계에 장착된 투르비용은 1분에 한 바퀴씩 회전하는 데 비해 `토릭 웨스트민스터`는 투르비용 시간을 1분에서 30초로 줄였다는 것.

파르미지아니 제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시계와 손목 사이가 뜨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계 옆면에 러그(밴드)와 케이스가 연결되는 부분인 프로파일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기 때문. 또한 시계의 핵심부품인 무브먼트부터 핸즈(시계바늘), 다이얼, 케이스, 작은 나사, 헤어스프링(시계동력을 주는 머리카락처럼 생긴 부품), 밸런스 휠, 그리고 가죽 밴드까지 전 제품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다. 연간 생산량은 5000개로 한정돼 있다.

대표적 제품에는 `토릭 웨스트민스터`와 `부가티` 라인이 있다. `토릭 웨스트민스터`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들어가 있는 기능 중심적 제품. 과거 시계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에 클래식하고 디자인 면에선 전위적(아방가르드)이고 독창적이다. 최근 출시된 `부가티`는 스포츠카인 부카티 베이런과 협업으로 만든 제품.

자동차 엔진 모양으로 생긴 디자인이 특징이다. 전 세계에 10개만 한정 출시됐으며 국내에도 1개가 들어와 있다. 가격은 4억원 정도다. 파르미지아니는 1997년 유럽의 부동산ㆍ미술품경매회사인 산도스에서 인수했으며,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제품 개발만 하고 있다. 국내에는 올해 들어왔으며 갤러리아 명품관과 롯데 에비뉴엘 명품관 2곳에서 취급한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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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18:04:02 입력, 최종수정 2009.09.24 18:49:58

◆명품시계 이야기 ◆⑦ IWC(International Watch Co)

IWC,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시계
◆명품시계 이야기 ⑦◆

스위스 시계 `IWC(International Watch Co)`를 한국어로 풀면 `국제시계회사`다. 바셰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처럼 공동 창업자 이름을 따거나 브레게처럼 유명한 캐비노티에(시계 장인) 이름을 딴 시계와 느낌부터 다르다.

IWC가 무역회사 같은 이름을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IWC는 1868년 당시로선 처음으로 스위스인이 아닌 미국 사업가가 스위스 시계를 국제무역을 통해 미국에 유통시키기 위해 만든 브랜드다.

당시 스위스 시계는 유럽 상류층에만 유통됐을 뿐 신대륙인 미국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F A 존스는 가장 공학적이고 정밀한 시계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엔지니어링 강국인 독일에 인접한 스위스 북동부 샤프하우젠 지역에 회사를 설립했다. 대부분 시계공장이 프랑스어권인 제네바 인근에 밀집한 것과 차별된다.

정밀함을 최우선으로 치는 IWC를 대표하는 시계는 1930년에 나온 포르투기즈다. 포르투기즈는 포르투갈 해상 사업가들이 항해 전용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서 나온 시계다. 그래서 명칭이 포르투기즈(포르투갈 사람들)다. 이 시계는 당시 시계업자 사이에 금기시되던 포켓워치 무브먼트를 최초로 손목시계에 사용해 만든 것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정확도와 정통성이 있는 포켓워치를 귀하게 여겼고, 손목시계를 차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IWC는 손목시계의 미래를 내다봤고 훨씬 비싸고 정교한 포켓워치 무브먼트를 손목시계에 과감히 사용했던 것.

1930년대에 나온 `포르투기즈`는 9시 방향 초침판과 3시 방향 파워 리저브 디스플레이(태엽을 최대한 감았을 때 동작시간을 보여주는 창)가 놓여 있는 모습이 부엉이 눈처럼 보인다고 해 `부엉이`이라고 불리며 IWC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가격은 스틸이 1300만원, 골드 소재가 2000만~3000만원 정도다.

IWC의 대표적 해상용 시계가 `포르투기즈`라면, 항공용으로는 `빅 파일럿`이 있다.

이 시계는 IWC가 파일럿을 위한 시계를 1936년에 선보인 뒤 4년 후 나왔다. 포켓워치 무브먼트와 조종사들이 장갑을 낀 채 태엽을 감을 수 있도록 크고 묵직하게 만들어진 크라운(용두) 그리고 비행복 위에 착용할 수 있도록 넉넉한 길이의 스트랩이 달린 `빅 파일럿`은 다이얼 사이즈가 55㎜로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손목시계였다.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인 빅 파일럿 크기는 46㎜(1600만원 선)다.

올해 IWC는 `빅 파일럿` 제품 중 두 세대가 함께 착용할 수 있는 시계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파일럿 워치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로듐 소재를 다이얼에 사용한 이 시계는 뒷면에 조종사와 부조종사 이름칸을 만들어 아버지와 아들 이름을 새길수 있게 한 점이 특징이다.

[김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