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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2일 토요일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멘토링']

"3대째 가업… 기업문화 바꿔 성장하는 회사 만들려면?"

 

입력 : 2009.08.21 16:52 / 수정 : 2009.08.21 19:31

"현장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세요 적당히 일하는 직원은 엄하게 야단을"

이나모리 가즈오는 세이와주쿠(盛和塾)라는 경영 아카데미를 통해 기업인들이 직면하는 경영상의 문제에 대해 '경영 카운슬링'을 해주고 있다. 문답 내용은 매우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다. 카운슬링 내용은 책으로도 묶여 나왔는데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경영을 묻다〉(비즈니스북스)와 〈경영의 원점,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서돌) 등이 그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경영을 묻다〉에 소개된 카운슬링 사례를,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해 소개한다.


저희 회사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연육(어묵의 재료) 제품과 냉동식품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또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말린 염건물을 자사 브랜드로 제조하고 있습니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며, 2년 전에는 14억엔, 작년에는 13억엔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상품 구성을 바꾸었지만, 이익은 오히려 점점 줄어들어 걱정입니다.

저희 회사 직원들은 업무 수행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직원들이 회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변명만 내세웁니다. 직원들의 적극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연초에 경영 방침 발표회를 열고, 현장 간부를 대상으로 매일 라인별 조회와 월별 제품 검토회 등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사외 연수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분기에 매출이 15% 증가하고, 경상이익도 약 3000만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저는 긍정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행동으로 전 직원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기업문화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항상 창의적으로 생각하자! 항상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행동지침을 제시하고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성과가 없습니다. 현재 저는 지역 모임이나 예정에 없는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쫓기어 일에 집중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직원들이 진심으로 납득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요?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자신의 경영 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영 모임 세이와주쿠(盛和塾)에서 기업인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다. /NHK 화면 캡처

당신은 경영에 대해 상당히 많이 공부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경영 이념과 이상적인 회사 상(像)을 머릿속에서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 회사는 OEM 업체이기 때문에 자사 브랜드로 생산·판매하는 회사와 비교해 20~30% 싸게 납품해야 합니다. 일반 연육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와 똑같은 원료를 사들여서는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좋은 재료를 다른 회사보다 더 싸게 구입해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1인당 생산액, 즉 생산성입니다. 직원들이 다른 회사보다 몇 배나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제품 원가가 다른 회사와 똑같아집니다. 그래서는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익은 현장에서 나옵니다. 경영자인 당신이 현장에 가야 합니다. 값싸고 좋은 품질의 원료를 구매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트럭을 운전해 몇십 ㎞ 떨어진 구매처를 찾아가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승용차를 몰고 있다면, 그것을 팔아 트럭을 사십시오.

인재 육성 역시 매일 매일 경영 현장에서 추구해야 합니다. 연육 제품 생산 현장을 보세요. 조미료 같은 재료를 잘못 보관해 내용물이 줄줄 새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에 대해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라고 엄격하게 추궁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원료 관리를 소홀히 하면 원가가 올라가니까요.

결국 경영자 자신이 현장을 잘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아무튼 10%의 이익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이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직접 현장에 가서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내용은 정확해야만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일에 정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지역 모임이나 내방객에 시간을 내주어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익을 내기 위해 당신이 매일 현장에 나가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사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쓸데없는 것까지 조사해서 잘 알고 있지 뭐야. 예전에는 현장에 오지 않았는데, 요즘에 일요일까지 현장에 나와서 상자를 열어보는 통에 대충 일하던 것이 모두 들통났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합니다.

당신 회사처럼 작은 기업에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사장이 되려면 먼저 현장에서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고서 추운 겨울에도 허드렛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현장의 어려움도 모른 채 당신은 사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학을 나오자마자 낙하산으로 사장이 됐습니다. 그러나 사장이 된 후부터라도 좋으니 현장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익을 내야만 하는데도 직원들은 그 대답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에게 해답을 줄 사람은 오로지 당신밖에 없습니다. 경영자는 간부의 몇 배나 일하고 몇 배나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경영자가 현장을 잘 아는 상태에서 큰 소리로 추궁하기 시작하면, 직원과 경영자의 관계가 멀어지고 분위기가 껄끄러워집니다. "꼭 저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하나?"라는 불만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마음을 써서는 경영을 할 수 없습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굳게 먹고 꾸짖어야 합니다. 야단을 치면 감정이 상하고 분위기도 나빠집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엄하여야 하는 걸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경영이념과 기업문화가 필요합니다.

교세라의 경영이념은 "전 직원의 정신적·물질적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류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직원들의 행복을 지키고자 하기에 나는 적당히 일하는 직원들을 엄하게 야단치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나 혼자 돈을 벌기 위해서 여러분을 혹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대우를 개선하려 하기 때문에 나는 더 엄하게 꾸짖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직원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직원들을 엄하게 야단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1/2009082101385.html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썩어가는 자본주의, 자본주의(慈本主義)가 구하리니…"

 

입력 : 2009.08.22 03:44

'살아있는 경영 神'의 일갈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인터뷰
"CEO는 배 부르면 사냥 않는 사자의 절도 배워야"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했던 것이 자본주의지만, 그것이 지나쳐 계속 편리한 것만을 추구한 결과가 이번 금융위기를 낳았습니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인류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77)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일본의 이 원로 경영인이 마침내 인터뷰를 승낙했을 때 기자는 마음이 들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히며, '살아 있는 경영의 신(神)'으로까지 불리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27세 때 맨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전자부품회사인 교세라와 일본의 SK텔레콤 격(格)인 민간 이동통신업체 KDDI 두 대기업을 창업했다. 두 그룹을 합치면 종업원 7만6000여명에 매출이 4조4000억엔(약 58조원)을 넘는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일본 재계의 큰어른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미국에서 기업인들이 가장 만나서 의논하고 싶은 인물이 워런 버핏(Buffett)이라면, 일본에선 단연 이 사람이다. 그의 경영 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시작된 경영 모임 세이와주쿠(盛和塾)에서 그의 강연이 끝나면 젊은 기업인들이 그를 빽빽이 에워싸고 차례로 질문을 던진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서 그를 만나는 의미가 남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윤리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른 지금, "땀 흘려 번 돈만이 진짜 이익"이며 "일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영혼을 닦기 위한 수양의 장"이라는 그의 동양적 경영 철학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는 이윤 추구와 주주 중심주의,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서구식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이상의 '레종 데트르(불어로 존재 이유란 뜻으로 그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영의 베이스엔 거래처, 종업원, 고객 모두를 사랑해 모두가 잘돼야 한다는 자비(慈悲)의 마음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 동안 '자비'라는 말을 다섯 번도 넘게 썼다. 그는 서구 기업 CEO들이 거액의 연봉을 받는 데 대해 "과거 전제 군주나 할 일"이라고 목소리 높여 비판하며, 성과급과 인력 구조조정에도 반대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하지만 그는 늘 원대한 꿈을 꾸었고 일에 관한 한 양보가 없었던 집념의 경영인이다. 그는 기술 개발을 위해 20년간 새벽 서너 시경에야 사무실을 떠나 '미스터 a.m.(오전)'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내가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일"이라고도 했다.

'아메바 경영'으로 대표되는 이나모리식 조직 관리는 관리에 강하다는 도요타나 삼성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지독하고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아메바 경영이란 회사 전체를 20명 이하의 소규모 조직으로 쪼개 독립 채산제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결산을 해서 아메바별 채산이 다음날에는 모두 공개된다. 실적이 떨어진 부문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의 사상의 토대는 불교에 있다. 그는 199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머리를 깎고 불가(佛家)에 입문해 세계 경영계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다이와(大和)라는 법명을 받고 탁발 수행까지 했지만, 이듬해 "개인의 철학 추구는 잠시 늦추고 국가의 일에 비중을 두고 싶다"면서 속계로 되돌아왔다.

그의 경영 철학과 인생관을 담은 책들은 국내에도 여러 권 번역돼 출간됐다. '카르마 경영'은 2006년에는 삼성경제연구소, 올해는 LG그룹 CEO들이 각각 선정한, 여름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에 포함됐다. 인간은 무엇인가에서부터 출발하는 그의 경영 철학은 평범하면서도 깊은 진리를 담고 있어 진한 울림을 준다.

그와의 인터뷰는, 일본에 신종플루가 확산된 탓에 몇 달간 연기됐다가 최근 교세라 교토 본사에서 이뤄졌다. 20층 사옥의 18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옆 접견실이었다. 옆쪽 창으로 교토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교세라와 KDDI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을 창업한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 하지만 그는“인생이란 극장에서 교세라 창업자라는 역할이 우연히 맡겨졌을 뿐,그 성공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세이와주쿠에서 후배 기업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소기업 경영자 중에서 경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영이란 것은 아무리 작은 식당을 하고, 야채를 팔아도 모두 부기(簿記)나 회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부기나 회계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얼핏 보면 이익이 나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니까 번 돈이 바로 원재료비로 둔갑하기도 하고 설비투자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수익이 안 남는다, 자금이 모자란다, 이렇게 돼버리기 쉽습니다.

따라서 우선 부기, 회계부터 배우고, 혼자서 안 된다면 회계사에게 맡겨서라도 확실히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둘째, 경영자는 어떻게든 이익을 내려 하고, 또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데도 길이 있습니다. 나 혼자 많이 벌면 좋겠다는 자기애(自己愛)만으로 돈을 벌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거래처와 종업원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오래갑니다. 또한 경영자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기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불타오르는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정말 인격밖에 없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맨 오른쪽)이 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맨 왼쪽)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교세라 제공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질문을 하면 눈을 꾹 감고 듣곤 했다. 처음엔 노령에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날아온 외국인 기자가 하는 질문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듣고, 답을 생각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질문하는 기자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에겐 이 인터뷰도 마음을 닦기 위한 수행의 일부인지 모른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너무 한가한 말 같기도 합니다.

"결코 느긋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경쟁이 아주 치열하고,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 경영은 매우 힘든 일이니까 자신의 회사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의 일을 곁눈질 않고, 자는 동안에도, 죽을 정도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불교에서 가르치는 자비(慈悲)라고 하는, 남에 대한 배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함과 동시에 거래처, 종업원, 고객 모두를 사랑해 모두가 잘돼야 한다는 그런 기분을 베이스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자본주의를 약육강식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적자생존(適者生存)이 더 올바른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을 보더라도 사실 약육강식이란 것은 의외로 흔하지 않습니다. 다만 환경에 맞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가의 한 포기 풀과 한 그루 나무까지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가뭄이 와도 비가 올 때까지 견뎌 보자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말라붙어서 시들어 버립니다. 인간처럼 '좀 더 편히 살자', '좀 더 호강을 누리자' 이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적자생존이란 의미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인데, 다만 일할 때의 마음은 자비와 배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불교에서 배운 훌륭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타(利他)'의 경영 이념을 정립했지만, 그가 창업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가 1959년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설립하고 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고졸사원 11명이 혈서를 들고 그에게 찾아와 임금 인상과 장래 보장을 요구했다. 그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마당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가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자네들을 배반한다면 그때는 나를 죽여도 좋다"고 사흘 밤낮으로 설득했다.

그래서 그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는 그때 큰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회사를 차렸다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의 생활을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제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처지였는데 말이다. 그는 회사란 직원과 사회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몇 주간의 고민 끝에 '회사는 내 기술을 세상에 알리는 무대'라는 생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전 직원의 행복을 추구하고, 인류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경영 이념을 정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식 경영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식 경영의 문제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원래는 미국도 부지런히 무언가 물건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지난 10년 동안엔 금융에 특화해 머리를 쓰고 돈을 굴려서 큰 이익을 얻고자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력을 하지 않고 큰 이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금융공학을 통해 금융 신상품, 파생상품을 만들었고, 이것을 넓게 운용하고 레버리지를 이용해 원금의 몇 십 배에 이르는 막대한 이익을 올리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번 돈을 버니 점점 더 돈을 벌려고 하고, 욕망은 더욱 커져 갔지요. 힘을 들이지 않고 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극단적으로 발전돼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물론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죠. 자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근대문명도 그렇고요. 좀 더 풍요로워지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근대 물질문명을 이뤘습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너무 지나쳐 계속 더 편리한 것을 추구했던 인류의 '업(業)'이 이번 위기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선 자본주의 그 자체가 문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공산주의로 바꿀 수도 없고, 다른 시스템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를 해나가되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세, 마음, 이것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거기에도 분명히 절도(節度)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지나친 면에 대해서는 법률이나 규칙을 바꾸는 것도 각국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것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욕망이 있는 한, 아무리 규칙이 있어도 부족합니다. 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이와 같이 자연의 절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대기업 CEO나 임원의 거액 연봉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높은 연봉은 그들의 능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확실히 회사가 큰 이익을 냈다면 리더인 CEO와 일부 고위 임원들의 역할이 컸을 것이므로 그만한 돈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금융계에선 극히 소수의 사람이 머리를 써서 거액의 돈을 운용함으로써 거액의 이익을 버니까요. 예를 들어 불과 100명이 수조엔을 굴려 수천억엔을 법니다. 그래서 1000억엔을 벌었다면 그 1할인 100억엔을 받아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900억엔이 남으니까요.

제조업체에도 그런 생각이 확산됐습니다. 교세라는 연간 수천억엔 정도를 벌지만, 전세계 6만명의 종업원이 벌어들인 것이죠. 그러나 그런 이익이 나면 '톱인 내가 1할 정도는 떼도 되지 않나' 생각해 제조업체에서도 거액의 돈, 즉 일반 종업원의 수십~수백배의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러나 과거 봉건주의나 전제주의 시대의 독재국가라면 몰라도 민주주의라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으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민주주의가 되어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사고방식은 과거 봉건주의 시대처럼 폭력적인 독재자, 전제군주가 하던 짓과 거의 같은 일들을 지금 다시 시작했어요. 이처럼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가 사회에 거대한 격차를 만들어 낸 것은 사회의 변화를 수렴하는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CEO의 끝없는 욕망이 확산돼 지금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말에 '만족을 안다'는 게 있는데, 이런 겸손한 마음, 그리고 절도(節度)를 아는 마음이 지금 리더들에게 요구됩니다. 위에 선 사람, 즉 리더라는 것은 자기 희생을 보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사람이 리더가 돼서는 안됩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리더가 된 조직은 불행한 조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에 대해서도 반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실적이 좋은 직원에게 상여금을 많이 주면 인센티브가 되겠죠. 그러나 문제는 항상 실적이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적이 좋아 월급이 오를 때는 좋지만, 노력을 했는데도 실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월급이 올라 그에 맞게 생활해 왔는데, 실적이 나빠 갑자기 월급을 반으로 줄인다면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했는데도 경기가 나쁘다거나 시장이 좋지 않아 실적을 올릴 수 없다면 속상하겠죠. 그리고 성과급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 격차가 생기면 팀워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감정을 도외시한 성과주의는 좋지 않습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표창해서 명예를 줍니다. 또 개인의 월급을 갑자기 크게 올려주지는 못해도 전체적으로 회사의 실적이 좋아지면 자신의 상여금도 올라갑니다. 다시 말해 성과주의가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열심히 해서 모두에게 귀속되는 것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표창하는 정도로 보상이 될까요? 그것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해 돈을 많이 주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다행히 우리 회사엔 그런 사람이 적습니다. 또한 저희도 회사에 이바지한 사람에게는 승진을 시켜준다든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후한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비의 마음입니다. 자기애가 아니라 말입니다. 주위의 사람과 성과를 나누는 기쁨, 이것이야말로 질(質)이 다른 기쁨이고, 아름다운 기쁨입니다."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전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의 바람이 일었습니다. 어려운 기업 환경 속에서 감원(減員)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불경기가 되면 매출이 줄고 적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매출은 줄어드는데도 고정비는 그대로이면 적자를 보게 되죠. 그리고 고정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에선 구조조정에 나서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저는 종업원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므로 어려울 때도 고용을 유지해 왔습니다.

교세라는 이를 위해 불황이 오래 이어지더라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늘 대비를 해왔습니다. 형편이 좋을 때 호강하고 돈을 다 써버리지는 않고 내부 유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주주의 것이니 돈을 벌면 바로 주주에게 배당을 줘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기업은 주주의 것만이 아닙니다. 한번 입사한 사람이 회사를 신뢰하면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업은 주주의 것만은 아니고 종업원이나 거래처, 소비자 등 폭넓은 이해관계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업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주주만 잘해주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데,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은 기업이 번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익을 주주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나누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의 1960년대처럼 극심한 노사 분규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노사 화합이 가능할까요?

"자본주의하의 경영은 개인주의적 사고로 흐르기 쉽습니다. 가능하면 종업원을 싸게 부리면서 돈을 많이 벌어 경영자가 많은 이익을 차지하려는 것이죠. 일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상이 생겨났죠.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업이 경영자만 아니라 종업원의 이익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경영자가 자비의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바탕에 있어야 경영자가 노조의 이해를 받아 노사 관계가 호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노조 사람들도 투쟁할 때 이런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닭이 달걀을 많이 낳아야 하는데, 닭을 때리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노사가 같이 닭을 키우자, 그래서 훌륭한 달걀을 많이 낳게 하자'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늘 이야기하는 공통적인 고민은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중소기업에 인재가 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중소기업 사장 본인 자신이 우수한 인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우수한 인재는 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중소기업 시절에는 역시 중소기업에 맞는 인재밖에 모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수한 인재를 모으지 않으면 회사가 잘 되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중소기업에 맞는 인재라도 사장이 그들과 하나가 되어 같이 공부하면서 그들을 우수한 인재로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발전시킨 경영자들이 모두 우수한 인재들이 있어서 대기업이 되었나 하면 그건 아닙니다."

―사람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스스로 잘 타는 자연성(自燃性), 불에 가까이 대면 타는 가연성(可燃性), 그리고 불에 가까이 대도 타지 않는 불연성(不燃性)이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연성이나 불연성인 직원을 자연성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불연성인 사람은 상대로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정열을 갖고 말하면 동조해 주는 가연성의 사람 이상은 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를 경영해 이런 훌륭한 회사로 만들고 싶고, 종업원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목표와 계획을 열정을 갖고 종업원에게 이야기하면 '아 사장님이 그런 생각이라면 나도…'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사장님이 말해도 그렇게 잘 되지는 않을 거야' 하는, 차갑고 정열이 없는 사람은 포기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타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개척해 나가는 자연성이 가장 좋겠습니다만…. 결국 스스로 하려는 의욕이 나고 강한 의지를 갖게끔, 종업원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업에 자연성(自燃性) 종업원은 얼마나 될까요? 예를 들어 10% 정도라든지….

(모두 웃음) "글쎄요. 10% 정도라도 아주 잘된 경우가 아닐까요."

―훌륭한 직원으로 키우고 싶다면 엄하게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불교에 대선(大善)과 소선(小善)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선(大善), 즉 큰 선(善)은 비정(非情)에 가깝지만, 소선(小善), 즉 작은 선(善)은 대악(大惡)을 낳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오냐 오냐'만 하면 불황기처럼 어려움이 닥칠 때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예를 들어 보겠다"면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너무 귀여워서 고생시키지 않고 '오냐 오냐'만 하면 아이는 잘못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 엄하게 꾸지람을 하지 않으면 인내력도 없고 노력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야말로 작은 선이 큰 악을 만든 것이죠.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즉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엄하게 꾸짖고 반드시 고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정(非情)하고 차갑게 보일 정도지만, 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큰 선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항상 직원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응석을 다 받아주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970년대에 태양광 발전 사업에 일찌감치 진출해 계속 적자를 보다가 최근에야 흑자를 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한 이유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저는 에너지 문제가 장차 인류에게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석유나 석탄 이런 화석연료가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따라서 고갈되지 않고 재생 가능한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세상에 확산됐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몇 개 회사가 이런 에너지를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 고생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앞날에 꼭 필요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도 어려움이 닥치면 포기하기 쉬운데, 그런 확신은 어디서 나옵니까? 30년이란 먼 미래의 일이 보이십니까?

"으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질문인데. (그는 한참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늘의 계시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요. 30년 전 하늘에서 떨어진 계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필사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열립니다. 제게는 종종 그런 계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엉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답변인데,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기술자 출신인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오랫동안 연구 개발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이 우주 어딘가에 '지혜의 창고'와 같은 장소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무언가를 절실히 바라고 미치광이처럼 몰두하다 보면 그 지혜의 창고로부터 섬광처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찾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토상을 제정해 세계적인 연구자들에게 시상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그런 경험을 공통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데 부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 다각화에는 관련 사업에 진출하는 것과, 전혀 다른 사업에 진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교세라의 경우 재결정 보석이나 의료용 세라믹재료, 절삭공구, 태양열 전지는 전자(前者)의 예가 되겠습니다만, KDDI의 경우는 후자(後者)에 해당합니다. 사업 다각화에 대한 철학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서 창의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루에 하나씩만 더 낫게, 더 잘하게 노력하면 1년만 지나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획기적인 신제품을 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손을 대는 것은 어느 정도 힘이 붙기 전에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힘이 축적된다면 다른 분야에 진출해도 무방하겠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는 성(城)부터 쌓아야 합니다."

그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과 결혼한 일로도 유명하다. 부인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물어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토의 한 중소기업에 입사해 연구실에서 화인세라믹스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집사람은 저보다 2년 늦게 입사해 연구실 일을 도와주고 있었죠. 그때 저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연구에 몰두하면서부터는 연구실에서 밥을 지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바쁠 때는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죠. 그랬더니 집사람이 가엾다고 봤는지 도시락을 갖다 줬어요. 기쁘게 먹었죠."

―그렇다면 사랑을 먼저 표현한 것은 사모님이셨군요?

"그건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불쌍해서 도시락을 갖다 준 것이었겠죠. (웃음) 지금도 그렇지만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日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사재(私財) 출연해 일본의 노벨상 '교토상' 만들어

지난 2007년 일본스미토모(住友)생명보험은 전국의 기업체 사장 2만6000여명에게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가 누구인가 물었다. 고인(故人)이 된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혼다 소이치로가 각각 1,2위에 올랐고, 3위가 바로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었다. 현존 인물 중에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청춘 시절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입시에서부터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결핵에 걸렸다 간신히 나았다. 대학 시험은 1지망에 불합격했고, 고향의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 시험에 번번이 낙방했다. 은사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에 입사는 했는데, 그 회사는 내일 당장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다 쓰러져 가는 회사였다.

그는 인생 역전(逆轉)의 비결을 "마음을 바꿔먹은 데서 출발했다"고 했다.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180도 마음을 바꾸어 일에 정성을 들이고 필사적으로 연구해 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그 후부터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실험에 열중했습니다. 그때 누적시킨 기술과 실적은 훗날 교세라를 일으키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는 27세 때인 1959년 300만엔을 빌려 목조 창고에서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세운다. 교세라는 세라믹을 소재로 한 전자부품의 제조·판매를 전문으로 하는데, 세계 대형 전자메이커 중에서 교세라와 거래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이다. 휴대전화와 태양광 발전시스템도 만들며 주부들에게는 세라믹 칼로 유명하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공대 출신이지만, 경영 관리로도 명성을 쌓았다. '아메바 경영'으로 대표되는 분산형 조직과 투명하고 과학적인 회계 시스템이 그것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은 "재고 관리나 현금흐름은 교세라처럼 훌륭한 회사가 드물다"고 말하곤 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1984년 미지의 분야인 통신시장에 진출, DDI(현 KDDI의 전신)를 창업해 공룡기업 NTT에 맞서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벌이고 나섰고, 결국 성공한다.

그는 사재(私財) 200억엔을 출연, 일본의 노벨상으로 비유되는 '교토상'을 만들어 시상하고 있다. 그는 "회사는 세습해서는 안 된다"면서 65세이던 1997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엔 교세라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6억엔을 몽땅 대학에 기부했다.

1983년 그의 경영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세이와주쿠(盛和塾)가 설립됐는데, 회원이 5000명에 이른다. 요즘 그는 교세라에 매일 출근해 자문을 해주며, KDDI에도 최고 고문으로 주 2회 자문을 해준다. 이 밖에 사외이사와 고문을 맡고 있는 회사가 하나씩 더 있다고 그는 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1/2009082101363.html

2009년 8월 1일 토요일

WPP 총수 마틴 소렐

'황제(皇帝)의 불치병'… '광고·마케팅 제국' WPP 총수 마틴 소렐 "난 '창업자의 병(病)' 앓고 있다"

갱년기 우울증 빠졌던 마흔 때 인생 돌파구 찾기 위해 창업
어떡하면 잘 키우고 이끌까 '창업자의 病' 앓고 또 앓다 세계 최고 '미디어 파워'로
"미디어그룹 분열과 재편성… 대폭풍 불어닥칠 것"

서울 여의도 TNS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마틴 소렐(Sorrell) WPP그룹 대표는 끊임없이 사업을 끌고나가야 하는 창업자의 고통을 '창업자의 병'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만큼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그는 WPP그룹을 20여년 만에 세계 정상의 광고·마케팅 그룹으로 키워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오길비그룹, TNS, 힐앤놀튼, 밀워드브라운….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에 종사하는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세계적인 광고·시장조사·홍보·마케팅 대행사들이다. 이 회사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WPP그룹 소속이라는 점이다.

WPP그룹은 광고·마케팅업계의 제국(帝國)이라 할 만하다. 런던에 근거지를 둔 이 지주회사는 27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103개국 1400여개 사무소에 7만여명이 일한다. 해마다 미국의 옴니콤(Omnicom)과 세계 광고·마케팅 순위 1·2위를 다툰다. 지난해 매출은 136억달러, 프로젝트 수주액은 674억달러.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돼 FTSE100 주가지수에도 포함돼 있다. 영국 증시에서 시장 가치는 7월 30일 현재 43위다.

이 거대 광고·마케팅 그룹을 이끄는 최고경영자 마틴 소렐(Sorrell)이 최근 방한, Weekly BIZ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영국 국적의 유대계 기업인인 그는 이 기업을 창업 24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40세이던 1985년 WPP의 모태인 '와이어 앤드 플라스틱 프로덕츠(Wire and Plastic Products)'를 인수하며 '늦깎이 창업'에 뛰어들었다. 누가 봐도 '뜬금없는 시도'였다. 당시 와이어 앤드 플라스틱 프로덕츠는, 이름 그대로 플라스틱과 철사 바구니를 만들던 기업이었다.

이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그는 잘나가는 광고회사 사치앤사치(Saatchi & Saatchi)의 CFO(최고재무책임자) 자리를 그만뒀다. 사치앤사치에서 그는 창업주 사치 형제에 이어 '제3의 형제'로 불릴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뒤늦은 창업에 뛰어들었을까?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TNS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소렐 대표의 대답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갱년기(male menopause)' 우울증에 시달렸거든요.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중년을 맞아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산을 시작한다. 아니면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그 해법이 소렐 대표에게는 '창업'이었다는 것이다. 농담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살폈다.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을 뿐 그는 진지했다. 세상에는 정말 별별 창업자가 많다.

기자의 미심쩍어하는 눈길을 느낀 듯, 소렐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정말 우울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죠. 그게 오히려 열정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창업의 열정에 넘치지는 않아요. 오히려 '창업자의 병(founder's disease)'을 앓고 있습니다."

창업자의 병?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렐 대표는 다시 설명을 계속했다. "회사를 창업해 본 사람들의 경험은 일반 사람들과 다릅니다. 저는 때때로 '남자가 애를 낳는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기업에 문제가 닥쳤을 때 창업자의 입장은 매니저나 직원의 입장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만약 무언가 일을 시작하고 싶다면, 그걸 끝내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문제와 이슈가 제기됩니다. 전 그런 고통을 지금 받고 있어요."
세계적인 M&A·미디어 전문가 마틴 소렐 WPP그룹 대표. /블룸버그

국내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사석에서 사업의 고통에 대해 물으면 "마치 나 혼자 천길 벼랑 끝에 선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확실히 창업자에게 경영은 진검이 오가는 사투(死鬪)인 것이다.

그러나 소렐 대표의 고통은 적어도 헛되지는 않았다. 20여년의 사투(死鬪) 끝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전문가이자 M&A 전문가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광고회사 임원으로 잔류했다면 감히 꿈꾸기 어려운 자리다.

그는 영국 기업들의 이미지를 높인 공로로 2000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전 세계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그는 어떤 언론이라도 만나고 싶어하는 세계 최고의 인터뷰 대상자(interviewee) 중 하나다.

그는 기대를 헛되게 하지 않았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그는 거침없이 미디어와 세계 경제 현안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를 언급했다. 예측에는 반드시 '첫째', '둘째'를 붙여 가며 신중하게 근거를 제시했고, 모호한 수치가 있으면 블랙베리를 두드려 즉석에서 확인했다.

'디지털 페니(Digital Pennies·지나치게 저비용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뉴미디어의 약점)', 'LUV(유럽·미국·아시아의 경제 성장 곡선을 각각 빗대 만든 신조어)' 등 자신의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귀에 달라붙는 '스티커 메시지'도 수시로 구사했다.

그는 미디어산업이 향후 저비용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공짜 콘텐츠 공급 시대가 온다고 역설한, 세계적인 IT전문가의 최근 저서 '프리(Free)'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현상에 우려할 만한 측면이 있으며, 세계 각 국가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평생 미디어를 상대로 사업을 해오셨는데, 향후 세계 미디어 산업이 어떻게 바뀔 것으로 예측하십니까?

"일단 뉴미디어와 전통 매체 간의 융합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경기 침체이고 또 하나는 뉴미디어의 부상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로 인해 많은 미디어 그룹들에 그동안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먼저 전통 매체부터 언급하겠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의 경우, 전통 매체들은 마치 '파리처럼(like flies)'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살해되고(killed)' 있습니다. 뉴미디어가 (정보 복사와 전달이 저비용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콘텐츠를 공급하니 전통 매체들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NBC유니버설 최고경영자(CEO) 제프 주커(Zucker)가 지난해 쓴 표현을 인용해 볼까요? '우리는 아날로그 달러(dollars)의 시대에서 디지털 페니(pennies)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마틴 소렐(Sorrell) 대표가 이끄는 WPP그룹의 성공 방정식은 공격적이다.

먼저 소렐 대표가 시대의 변화를 읽고, 적기(適期)에 저평가된 기업을 산다. 그리고 경영을 호전시키고, 그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또 다른 저평가 기업을 사들인다.

이 성장 모델은 위험이 크다. 세계의 미래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그에 따라 적정한 기업가치를 추산해내지 못하면 단번에 몰락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렐 대표는 통찰력으로 이 위험을 거뜬히 뛰어넘어 왔다는 평가를 듣는다.

'광고 못지않게 홍보(PR)와 입소문 마케팅이 기업의 중요한 마케팅 도구로 성장할 것'이란 그의 예측이 대표적이다. 그는 WPP 인수 후 3년 동안 18개 회사를 사들였는데, 대부분이 PR·입소문 마케팅 대행사였다. 지금 광고회사들이 홍보와 입소문 마케팅을 강화하는 흐름을 감안하면 20여년 앞을 내다본 셈이다. 각국 언론은 호오(好惡)를 불문하고 그의 통찰력과 기업가 정신에 대해서만은 "제국의 건설자(영국 인디펜던트)"나 "모험가(미국 뉴욕 선)"라는 표현을 통해 경의를 표한다.

그의 통찰력의 원천은 '현장'이다. 지금도 그는 1년에 25~30개국을 돌아다니며, 각국 현장에서 지식을 직접 습득한다. 이날 인터뷰 장소에서도 그의 '습관'은 적잖게 기자를 당황하게 했다. 인터뷰 서두에 오히려 자신이 기자인 것처럼 '심층 인터뷰'를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한국 정부에 대해 대중은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까?" 등 간단치 않은 질문이 잇달아 쏟아졌다.

사무실은 분명 에어컨 바람으로 서늘했지만, 기자의 이마에는 뜻하지 않은 '역(逆) 인터뷰'로 진땀이 났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인터뷰에 앞서 WPP 계열사 직원들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소렐 대표가 한국에서 휴식시간도 거의 없이 1시간마다 회의를 잡아 계열사 직원 수십명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책상 위를 흘깃 쳐다보니 회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용으로 쓰였던 샌드위치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한국이 처음이냐고 물었다. 그가 "몇 번 다녀갔다"고 답했다. 이미 여러 번 방문했으면 한국을 잘 알 텐데, 왜 질문을 하느냐고 묻자 바로 대답이 이어졌다.


"무슨 말을…. 보통 한 나라에 3일 정도를 머무르는데, 그중에 6시간을 자니까 최대 18시간을 현지 지식 습득에 씁니다. 그래 봐야 약 54시간 정도가 되죠. 하지만 당신은 1년에 수백 일을 한국에 있죠. 그러니 지금 당신이 나에게 한국을 가르쳐 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갑자기 170cm가 채 안 되는 이 남자의 열정과 호기심이 방 전체를 꽉 채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국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그의 키는 약 167cm이다).

이제 기자가 그의 지식을 배울 차례였다. 질문을 던지자, 그 역시 세계 각국의 현장에서 습득한 미디어와 경제 변화 예측을 시작으로 흔쾌히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전통 매체의 역할을 뉴미디어가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논란이 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뉴미디어가 전통 미디어를 대신해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주는지 여부입니다.

즉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용자가 직접 만든 콘텐츠(user generated content)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저나 이 방의 다른 사람들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어요. 하지만 과연 이런 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전통 매체의 콘텐츠를 대체할 만큼 충분히 질이 높을까요? 일관성, 정확성, 긴박성에서 사용자 제작 콘텐츠는 정말로 전통 매체의 콘텐츠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정부나 국민은 이 문제를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구글 같은 뉴미디어가 정말 그들의 슬로건대로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다(Google does no evil)'고 믿는다면, 구글에 인터넷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갖도록 허용하고 사람들은 공짜로 콘텐츠를 받아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이나 국민을 대리한 정부는 미디어의 다양성 보호에 나서야 합니다. 즉 기존 미디어들이 좀더 경쟁력을 갖는 융합(consolidation)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현재 이 문제는 미국과 유럽 같은 서양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지만, 아시아도 비슷한 갈림길에 직면할 것입니다."


―뉴미디어 자신도 문제가 있습니까?

"그럼요. 무엇보다 뉴미디어는 수익 모델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페이스북은 큰돈을 벌지 못합니다. 트위터도 돈을 못 벌죠. 유튜브와 마이스페이스도 아마 큰 재미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예외적으로 큰돈을 벌고 있습니다.

뉴미디어 기업들은 매출이나 이익보다는 인터넷 트래픽(소통량)이나 방문자 수에 근거를 두고 기업을 운영합니다. 아마도 이익을 내거나 현금을 창출하기 전까지 5~6년은 더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벤처 캐피털은 더 돈을 쏟아 부어 현금을 소진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명확합니다. 뉴미디어와 전통 매체 간의 융합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많은 미디어그룹이 효율성을 잃고 분열될 것이고, 이들이 새로운 형태로 재통합될 것입니다. 이것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으로 번질 겁니다.

심지어 뉴미디어 간 제휴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MS와 야후(Yahoo)의 제휴 논의가 매우 활발한데, 이는 구글이 주도하고 있는 검색시장의 균형을 위해 매우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MS와 야후는 인터뷰 며칠 후인 29일 검색 사업 제휴에 합의했다)."

―한국도 최근 미디어 간 교차 소유를 완화하는 미디어법 개정을 거쳤습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미디어 간의 장벽을 없애는 취지로 법을 통과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디어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긍정적입니다. 사실 한국도 미디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나라 중 하나입니다. 도움을 적절하게 받는다면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을 배출할 역량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전통 인쇄 매체를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만약 당신이 한 국가, 한 개의 미디어 플랫폼에만 머무른다면 그건 문제입니다. 다만 한국어로 발행되는 신문이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이로운 면은 있어요. 당신이 다양한 국가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신문, 즉 영어 신문이거나 프랑스어 신문이거나 독일어 신문이었다면 경쟁이 더 치열했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한국 신문이 뉴미디어로 진출하고, 해외로도 진출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취약한 미디어를 꼽으라면 상업방송인 iTV인데, 영국에서만 무료로 제공되며 '한 국가, 한 플랫폼'에만 머무르다가 경쟁력이 약화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 뉴미디어 회사를 하나 산다면 어디를 고르시겠습니까?

"당연히 구글이죠. 그들은 인터넷 검색 서비스가 뛰어난데, 앞으로 모바일(휴대전화용) 검색 서비스시장에서 더 큰 기회를 맞을 겁니다. 이미 구글은 이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가속이 붙고 있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기업들과 구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좀 복잡합니다. 저는 구글을 한때 '프레네미(Frenemy)'라고 표현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적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 면을 생각하면, 사실 당신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변은 '차세대 구글(구글에 비견할 만한 차세대 유망주를 의미)'일 겁니다(큰 웃음). 혹시 한국에서 박사들이 몇 명 차고에 모여 엄청난 뉴미디어 기술을 개발한다면 좀 알려주세요."

―많은 기업 CEO들을 만나실 텐데, 세계 경기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로이터통신의 한 기자가 이런 말을 했었죠. 세계 경기 전망을 요약하면 '러브(LUV)'라고. 서유럽은 L자형, 미국은 U자형, 아시아는 V자형으로 경기가 움직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는 유럽의 경우엔 약간 올라간 이탤릭 'L'자 형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꼬리가 길게 늘어진다는 의미).

아마도 경기는 계속 좋아질 겁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올 수 있습니다. 과연 정부가 계속 적자 재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세금을 올릴 수 있을까요? 높은 실업률을 두고 볼 수 있을까요? 제 생각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돈을 더 찍어내야 하고, 결국 언젠가 인플레이션이 올 겁니다."

―광고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세 가지 변화가 있을 겁니다. 첫째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중앙 및 동유럽지역의 부상입니다. 둘째는 뉴미디어 광고의 부상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중요한 점은 바로 통찰력(insight)입니다. 소비자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이 장차 이 업계에서 매우 중요한 능력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데이터는 점점 많아질 것이고, 광고는 데이터에 의해 집행될 것입니다. 결국 주어진 데이터를 보고 왜 소비자가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에서 승부가 판가름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키(key)는 바로 새로운 시장, 새로운 매체, 소비자 행동원리에 대한 이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공격적인 M&A를 벌여왔던 만큼 M&A의 타이밍을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기업들이 해외로 신규 사업을 시작하거나 M&A를 하기에 적기입니까?

"제 대답은 '예스(Yes)'입니다. 지난 몇 달간 우리는 경기 후퇴와 함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 본사가 있는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이 급격하게 보수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목격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 같은 곳의 회사들은 이들이 투자를 줄이는 사이 거꾸로 투자를 늘리고,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국적 회사들은 투자를 늘릴 수가 없어요. 이들은 분기별 실적으로 성과를 판단하기에 단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줄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 점유율이 한 번 줄어들면 다국적 회사들은 나중에 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겁니다."

―이런 질문 많이 받으셨겠지만, 본인이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웃음). 광고와 PR, 디자인, 시장 조사 비즈니스를 일찌감치 통합한 게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20여년 전만 해도 PR이나 디자인 대행 등은 하찮은 업무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저는 광고와 다른 비즈니스를 통합하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87년에 당시 우리 회사의 13배 규모였던 JWT그룹(광고)을 사들였죠. 이어서 힐앤놀튼(PR), MRB(마켓리서치) 등 기업들을 잇달아 통합해 남들에 앞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산업에 큰 흥미를 느낀 점도 작용했습니다. 광고나 마케팅 대행 사업은 역사나 경험 같은 게 꼭 필요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PR 캠페인을 직접 집행하거나 직접 광고를 만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처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입 장벽이 없고, 매우 개방적인 산업입니다.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산업과도 비슷해요. 원칙적으로 이 업종의 회사들은 오로지 가장 마지막으로 수행했던 작업에 의해서만 평가받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을 위한 충고를 해주시겠습니까?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 시장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 아시아의 국가들과 새로운 무역관계를 늘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호주는 선택을 잘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호주는 확실하게 아시아 편을 택했는데,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방금 호주 시드니로부터 왔는데, 모두가 경제에 아주 낙관적이었습니다. 경기 침체란 통상 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를 말하는데, 그런 정의로 본다면 호주는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경기 침체를 피해냈습니다. 이는 명확하게 중국에의 의존도를 높인 덕분입니다. 호주는 우리 크리켓 속담에 따르면 '편을 잘 골랐습니다(That's batting on a good wicket)'."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시세이도 마에다 신조 사장 '예술경영'

시세이도의 '예술경영' 이끄는 마에다 신조 사장

"40% 위험은 감수… '60% 즉결주의'로 과감히 승부"

입력 : 2009.07.24 16:00 / 수정 : 2009.07.24 16:06

 

미국 최고의 디자인 스쿨로 꼽히는 RISD(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의 존 마에다 총장은 지난 4일자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독창성과 예술성의 잡종 교배야말로, 기술 수준이 평평해진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무기"라고 말했다.

일본의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資生堂)는 마에다 총장의 말을 실증하는 좋은 사례다. 일본 도쿄 시오도메의 시세이도 본사에서 만난 마에다 신조(前田新造·사진) 사장은 시세이도의 저력이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고집"에서 비롯됐으며, 시세이도의 정신은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합하고 '오리지널'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세이도는 1872년 설립된 서양식 약국이 모체였다. 아버지가 창업한 이 약국을 1915년 화장품 회사로 바꾼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 시세이도 초대 사장은 예술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시세이도의 전통을 만들어냈다. 그는 스스로 파리에서 미술과 사진을 배웠고, 직원들과 함께 서양을 돌며 견문을 넓혔다. 그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디자인 부서(의장부)를 만들고 시세이도의 상징문양인 하나츠바키<왼쪽 사진>를 도안했다. 1919년에는 도쿄 긴자의 명소가 된 갤러리와 레스토랑을 지었다. 그 결과 시세이도의 디자이너들은 서양의 아르누보(자연에서 소재를 얻은 문양이 특징인 19세기 말·20세기 초 미술 사조)와 동양적인 감성을 결합한 독특한 '시세이도 스타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시세이도는 디자인 경쟁력을 경영의 핵심으로 여긴다. 예를 들면 시세이도의 디자이너는 입사 후 1년 동안 글씨 쓰기를 새로 배운다. 시세이도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서체를 어떤 디자인에서건 익숙하게 쓰도록 연습시키는 것이다. 디자인 아웃소싱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디자인 노하우는 1대 1로 도제식으로 전승된다. 이 같은 전통에서 야마나 아야오, 마쓰나가 신, 나카무라 마코토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탄생했다. 시세이도 디자인 부서의 입사 경쟁률은 800대 1이 넘는다.

시세이도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아름다움'을 세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 매출 비중이 계속 늘어 작년엔 37.8%에 달했다.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선전하고 있지만, 해외 매출 비중은 11% 정도이다. 시세이도는 유럽, 미국은 물론 중국 등 신흥시장에도 진출해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대리점이 2만5000여개에 달한다. 경쟁 업체인 가네보가 2004년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도산한 것과 대조적이다.

마에다 신조(前田新造·62) 시세이도 사장은 날렵한 선의 정장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어 넘긴 단정한 모습이었다. 직원 시절 시장 개척을 위해 수십 차례 한국을 드나든 '한국 전문가'답게, "안녕하세요"가 그의 첫 인사였다. 꼿꼿한 자세에 엷은 미소로 상대를 경청하며, 엷은 스킨로션 냄새를 풍기는 그를 마주하고 있으니 신사(紳士)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와 닿았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 데이비드 아커(Aaker)가 쓴 책 '브랜드 리더십'에 따르면, 시세이도 스킨케어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연상시키는 브랜드 이미지는 화장품 회사로는 이례적으로 '혁신'으로 돼 있다. 아모레 퍼시픽 부사장 출신인 이해선 CJ오쇼핑 사장에게 시세이도의 경영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가끔 부진하다가도, 혁신과 현지화로 성장을 이뤄내는 회사"라고 정리해줬다. 시세이도의 2대 사장을 지낸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 명예회장은 "혁신이 없으면 전통도 없다"며 "혁신을 통해 전통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사장인 마에다 신조의 2005년 사장 선임 자체가 일본 재계에서는 혁신적인 인사로 화제가 됐다. 당시 회사의 성장이 정체 기미를 보이자 시세이도는 경영기획실장이던 그를 사장으로 발탁했다. 오너 가문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무려 14명의 선배를 뛰어넘은 인사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현장 중심 개혁에 착수했다. 그는 자신의 경영 방침으로 '60% 즉결주의'를 내걸었다. 60%의 확률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40%의 위험이 있어도 바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상품을 파는 것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100%의 안전성을 추구한다면 상품을 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따라서 60%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물론 그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시대 조류의 본질을 확실하게 파악해 둬야겠지요."

100개가 넘던 시세이도의 브랜드를 핵심 6개 브랜드로 줄인 결정도 '60% 즉결주의'에서 나왔다. 너무 많은 브랜드는 인건비와 판촉비 부담으로 회사에 짐이 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결정에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부들은 반발했고, '사장의 독단'이라는 이메일도 날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밀어붙인 브랜드 통합의 효과는 확연했다. 츠바키(샴푸)나 마키아주(메이크업)처럼 핵심 브랜드에 마케팅 비용이 집중되면서 분야별 1위로 올라섰다.

그는 판매사원(뷰티 컨설턴트)의 평가척도에서 '매출' 항목을 없앤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대신 고객이 판매사원의 서비스에 대해 평가한 앙케트 엽서를 평가척도에 넣었다. "판매사원은 고객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의 활동이 매출 목표 달성에 얽매이게 되면 고객의 만족감은 소홀하게 생각하기 쉽다는 판단에서였죠. 매출 목표라는 건 사원이 마음에서부터 고객이 아름다워지길 바라고 그 열의가 고객에게 전해짐으로써 고객이 계속 시세이도를 방문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달되는 것입니다."

그가 매출 목표 철폐를 결심했을 때 사내에선 모두 불안해했다. 판매사원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매출 목표는 한번 달성한 뒤에는 대충 달려가면 된다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고객의 만족도를 평가척도에 포함시키면 움직이고 있는 시간 모두를 고객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결과 모든 고객들과의 만남이 진검 승부가 되는 것이죠. 이 개혁이 성공한 것은 실시 2년 반 만에 고객으로부터 160만통의 앙케트 엽서를 받은 것으로 증명됩니다. 그 중 90%는 칭찬하는 말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마에다 사장은 지난 2007년 기업 내 대학인 '에콜시세이도'를 개교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철학이나 문학도 포함돼 있다. 화장품 회사 임직원들이 데카르트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것은 이 회사만의 진풍경일 것이다.

―직원들에게 철학이나 문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향후 10년간 일어날 가장 본질적인 변화가 무엇일까요? 글로벌화일 것입니다. 그리고 글로벌화의 파도가 비즈니스맨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양성에의 대응력일 것입니다.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는 의도도 거기에 있습니다. 경리나 인사부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지 않던 철학이나 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으로 다양성의 대응력을 단련하게 됩니다."

―예술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일본 기업 중에서 시세이도의 근무 환경이 비교적 자유롭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평이 있습니다.

"저는 직원 시절부터 시세이도가 정말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발적인 예술 동호회 활동이 장려됐지요. 회사 철학에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 life balance)'라고 해서 일과 사적인 생활을 양립할 수 있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개념이 잡혀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확산된 개념이지만, 수십년 전에 특히 일본에서는 예외적인 경영 방침이었죠. 예술가이시기도 했던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 시세이도 초대 사장의 영향이 기업 문화에 크게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모든 제품은 리치(rich)해야 하며, 제품 스스로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분의 철학은 지금도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제품이 리치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제품이 리치해야 한다는 것은 제품을 구성하는 요소 전반에 미(美) 의식이 풍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품 디자인은 물론, 포장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말고 아름다움이 넘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모든 분야마다 장인(匠人) 정신이 살아 숨쉬어야 합니다. 또 소비자에게 제품 자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은, 제품을 봤을 때 바로 직관적으로 시세이도의 철학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추상적인데요. 제품에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만큼 최선을 다한 사례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부 다 사례라고 말하고 싶지만…(웃음). 굳이 사례를 들어야만 한다면 2006년 샴푸로 출시된 '츠바키'를 사례로 들고 싶습니다. 2006년 이전에 우리 회사에는 샴푸 브랜드가 7개 있었습니다. 그런데 7개 브랜드를 다 합쳐도 샴푸 업계 톱 3에 들지 못했어요.

우리는 시세이도의 '정신'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제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시세이도의 문양이었던 동백꽃(하나츠바키)을 브랜드화하기로 한 것이죠. 우리는 3년의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동백꽃에서 이름을 따서 '츠바키'를 아예 상품명으로 했습니다. 샴푸 용기는 동백꽃의 주된 색깔에 맞춰 붉은 색조에다 꽃병 모양으로 디자인해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심었습니다."

―제품에 시세이도의 '브랜드 이미지'를 심었다는 의미입니까?

"네. 소비자의 진심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 제품의 세세한 기능이 아니라 브랜드에 담긴 신뢰입니다. 실제로 저희는 츠바키를 마케팅할 때 예전처럼 샴푸의 기능을 일일이 소비자에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희는 '일본 여성의 검은 머리는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감성적인 콘셉트만 담았습니다. 그 결과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츠바키는 출시 2주 만에 샴푸·린스 시장 1위로 올라섰다.)"

―'제품에 정신을 담으라'는 말은 쉽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데요. 직원들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시하십니까?

"고객의 외모를 바꿔주는 것은 물론, 마음까지 풍요롭게 바꿔줄 수 있도록 주문합니다."

―제품으로 마음을 바꾼다?

"네.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화장품은 기본적으로 피부를 아름답게 가꾸는 제품입니다. 하지만 사실 한 단계 더 들여다보면 화장품은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는 제품입니다. 사회 공헌활동을 하다 보면 좀더 이 점을 뚜렷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임직원은 매년 2000여곳의 노인 시설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화장을 해 드립니다. 저도 가끔 나가는데, 그때마다 무한한 화장의 힘을 절감합니다.

예를 들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분들에게 화장을 해 드리면 생활 자체가 활기를 찾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화장한 얼굴에 만족을 느끼시면서 세수를 한다거나,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스스로에게 신경을 쓰게 됩니다. 심지어 기저귀를 쓰던 분께서 스스로 기저귀를 쓰지 않게 되시기도 합니다. 이런 게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런 보이지 않는 가치를 실제 제품에 구현할 수 있습니까?

"물론 저희가 단순히 '화장의 힘은 강하다'고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화장의 힘을 수치화하고, 연구 개발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저희 스스로는 '휴먼 사이언스'라고 부르지요. '뷰티 솔루션 센터'라는 곳에서 맡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예를 들어 화장했을 때 혈류량의 증감을 측정하기도 하고, 마음의 안정 여부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노화 방지(안티 에이징)나 미백(화이트닝), 발모 제품들이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 개발됩니다."

―나라나 지역마다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모두 다를 텐데요.

"물론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여성들은 미의식이 높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일본 여성들과 비슷합니다. 세안 후에 기초적인 피부 손질을 수차례에 걸쳐 매우 꼼꼼하게 합니다. 피부 색조와 머리카락 색깔도 일본 여성들과 비슷하고, 화이트닝이나 안티에이징에 관심이 많은 면도 비슷합니다. 한국 여성을 위한 제품을 개발할 때는 이런 점을 참조하고, 일본 시장 제품 중 적합한 제품을 적용해 출시하기도 합니다.
시세이도 제공 도쿄 시오도메 본사 앞에서 팔짱을 낀 포즈를 취한 마에다 신조 시세이도 사장. 그는 2005년 취임 이후 60%의 가능성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는‘60% 즉결주의’를 내걸었다.

반대로 중국 같은 경우는 상당히 리치한 제품, 즉 유분이 많고 사용 질감이 두꺼운 제품을 좋아합니다. 로션 같은 경우도 촉촉하고 심지어는 약간 끈적이는 느낌까지 있는 제품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중국 시장에서는 중국 소비자의 '보이지 않는 취향'을 커스터마이징한 제품을 따로 설계해 내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인 같은 경우는 감귤 향을 싫어합니다. 그런 제품은 판매할 때 거의 배제합니다."

―화장품 업계가 전반적으로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향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합니다. 특히 마케팅 비용이나 인건비는 줄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저희가 성장시키고 싶은 부분, 그리고 성장할 여지가 있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택과 집중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향후 성장할 시장은?

"음…. 아무래도 중국이겠죠. 물론 한국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너들이 전통적으로 사진, 미술 등 예술에 조예가 깊으셨는데, 사장님도 예술에 개인적인 취미가 있으십니까?

"(웃음) 트롬본을 붑니다. 대학 때 특히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면 제대로 시작할 예정입니다."